76. 무 등 을 보며
서 정 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산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현대공론. 1954. 8.
* 이 시는 6.25의 상처와 물질적 궁핍이 극심한 가운데 무등산의 크고 의젓한 자태를 삶의 모형으로 삼아 쓴 작품으로, 조선대 교수로 재직시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