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밀 어
서 정 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 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늘인
채일을 두른 듯, 아늑한 하늘 가에
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 가에
인제 바로 숨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백민. 1947. 2.
* 이 시는 1947년 2월에 발표된 것으로, 해방 후의 시대적 분위기를 호흡하면서 씌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 등장하는 암울한 싯구, 즉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은 일제 치하의 고통스런 현실과 관계가 있으며, ‘아늑한 하늘’, ‘뺨 부비며’, ‘바로 숨쉬는’과 같은 밝은 싯구는 해방의 환희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 시는 순이․영이․남이로 대표되는 우리 민족이 죽음의 세계와 같은 일제 치하를 벗어나서 광복의 세계인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기쁨을 노래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