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97. 쉽게 씌어진 시

높은바위 2005. 9. 9. 06:04
 

197. 쉽게 씌어진 시

 

                        尹    東    柱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우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후의 악수.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1.시작(詩作) 배경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좌절과 번민, 무력감을 부끄럽게 느끼면서 끝없는 모색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시인의 사명감을 자각해 가는 성찰의 모습을 솔직하고도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2.시상의 전개

  *제1,2연-이국의 육첩방에서 시나 적어 볼까

  *제3,4연-학비를 받고 강의를 들으러 감

  *제5,6,7연-시가 쉽게 씌어짐이 부끄러움

  *제8,9,10연-시대의 아침을 기다리며 위안의 악수를 함

 

3.주제:이국에서의 고독과 시인으로서의 천명성 확인

 

4.제재:시가 쉽게 씌어지는 부끄러움 

 

5.성격:명상적, 고백적

 

6.詩語의 의미

  *육첩방(六疊房):작은 방. 억눌리고 암담한 공간

  *천명(天命):하늘이 내린 피할 수 없는 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