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10. 성북동 비둘기

높은바위 2005. 7. 19. 23:28
 

110. 성북동 비둘기

 

                                                   김 광 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1968. 월간문학

 

  * 이 시는 문명의 발달에 따른 급격한 도시화, 이로 인해 나타난 인간의 삭막해져 가는 삶의 모습을 통해 형상화한 문명 비판적인 작품이다.

  제1연의 1,2행에서는 상황을 제시했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김(사람들이 그 곳에 살게 됨)에 따라 비둘기는 ‘번지’(갈 곳)이 없어졌다(이 시의 주된 갈등은 바로 생긴 번지[주택가, 문명]와 없어진 번지[보금자리, 파괴된 자연] 사이의 대립에서 생긴다). 이 곳에서 삶들은 새벽부터 돌을 깨고 그 산울림은 예전의 고요함을 무너뜨린다. 이처럼 사람의 손에 의해 자연이 손상되는 모습을 시적 자아는 비둘기의 가슴에 금이 가는 것으로 노래하고 있다. 제2연에서는 이렇게 쫓겨난 비둘기의 쓸쓸한 모습을 노래했다. 이것은 인간 자신의 쓸쓸한 자화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제3연에서는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과 함께 살ㅇ과 평화를 나누던 비둘기는 이제 모든 것을 잃고 쫓기는 새가 되어씀을 노래했다. 이것은 비둘기가 입은 피해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역시 그들의 이익과 탐욕에 의해 자신의 삶 속에서 사랑과 평화가 숨쉴 만한 여지를 스스로 파괴해 버렸음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피해를 입은 비둘기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파괴적인 행동을 고발하고, 이를 통해 사랑과 평화가 가득찬 세계가 실현되기를 희구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새를 통한 인간의 삶의 문제를 노래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박남수의「새」와 유사한 점이 있다. 다만,「새」는 처음부터 포수로 설정된 인간과 대립적인 관계인데 비하여, ‘비둘기’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던 사랑과 평화의 새였으나 그 관계가 깨어진다는 점에서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