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와 음악 동영상/高巖 이명신 詩畵 1

086.詩人의 자화상, 그 의식에 관한 탐색(문학평론가 김선)

높은바위 2006. 1. 8. 09:35
 

詩人의 自畵像, 그 意識에 관한 探索

- 이명신 시집, 「길은 날고 싶다」를 中心으로 -

                         

김선(I. A. E. University 交換敎授, 文學評論家)



시인 이명신-

미리 밝히건 데 나는 이 분에 대한 일면식도 없다.  그러기에 어쩌면 적임자가 아닐 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어떤 선입감 없이 관련된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집 원고, 「길은 날고 싶다」에 담긴 작품들을 통독한 후 “글은 그 사람이다.”라고 말했던 철학자 뷔퐁의 말,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나는 저 유명한 고독(孤獨)의 시인 릴케(Rilke, Rainer Maria, 1875.12.4~1926.12.29)의 생애와 작품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아마도 작품의 수준이나 인지도를 떠나서 시인에 대한 동질의식(同質意識)을 유사하게 느꼈던 소이라고 자문자답(自問自答)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몇 마디 소회를 덧붙이겠다.


   릴케, 그는 51세의 생애를 마감하는 날까지 보이지 않는 영혼(靈魂)의 내출혈(內出血)을 앓으며 절대고독에 대한 초극(超克)의 의지로서 시작에 임했던 시인이다.

그가 평생을 추구했던 뮤-즈의 신, 그 뒤를 쫒으며 그가 지상에 남긴 작품들을 대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숙연해진다.

지금까지 동서고금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시인,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위해 마치 불길에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자신의 전부를 내던졌던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의미로 시인의 존재는 자신의 노래가 비록 물질적으로는 거의 돈이나 빵이 못될지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시인 에머슨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친다. 마치 벌이 자신의 침을 쏜 후에 죽어가는 것처럼.”

그렇다! 바로 이러한 정신 자세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인간의 생존 가치를 드높이고 보다 고상하고 이상적인 삶으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이명신 시인의 다양한 시각 중에서 뮤-즈를 쫓는 시인의식(詩人意識)과 자화상(自畵像)에 포커스를 맞추고 몇 가지 관점을 요약시켜 논급하려고 한다.


움직일 수 없는

뿌리를 박은 채

황무지를 떠나 온 사연

가자고 나설 때는

청운(靑雲)의 뜻이 가득하였다

날선 더듬이를 뻗으면서

강을 깔고 드세우고

산을 깎아 드러뉘고

앞으로

앞으로

하늘이 열리고

바다가 맞닿고

세상이 바뀌고

길은 길이 만드는 것이지

세월이 남기는 것이 아님을

굳은 살 걸쳐 입고 진화하지만

비빌 언덕이 없고

꼬깃꼬깃 누벼진 기억을 털고

돌아누우면 천길 낭떠러지

안으로 늘어나는 나이테만큼

옆구리엔 시린 강물이 출렁인다

 

 

 

먼 산

황혼의 옷고름이 풀리고

길섶엔

제비꽃과 민들레가 서럽게 밟히고

배꽃 잎이 깃털처럼 날리는 날

바람을 들춰 입고

길은 날고 싶다

다져만 온 길

되돌아 갈 길을

 

 

           「길은 날고 싶다」 全文


시의 경우 어떤 주관적 단정은 오류를 범할 위험성을 지녔기에 이점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이명신 시인의 작품에 나타난 「길」은 시인의 이상이자 꿈이며, 희망과 절망, 본의 아니게 뒤틀리고 어긋나는 현실에 대한 복잡다단한 심리적 카오스의 총체(總体)로 나타난다.

「길」의 반대 개념은 「벽」, 즉 가로막힘, 장애물(障碍物)의 의미를 지닌 대칭적 대상이다.

「굳은살 걸쳐 입고 진화하지만/ 비빌 언덕이 없고」에서 보듯이 고달프게 현실의 시련에 부대끼며 살아온 자신, 후원 배경이 없는 자화상의 한 단면으로 나타난다.

「꼬깃꼬깃 누벼진 기억을 털고/ 돌아누우면 천 길 낭떠러지」, 꿈과 현실의 역현상, 그 갈등에 대해 심도 깊이 천착하고 있다.

「안으로 늘어나는 나이테만큼/ 옆구리엔 시린 강물이 출렁인다」

파란 많은 인생의 노정에서 겪는 희노애락, 오욕칠정을 간결하고 리얼하게 묘사하여 독자의 공감대를 확장시킨다.

인용한 작품에서 「갇힘」과 「풀려남」,「닫힘」과 「열림」,「꿈」과「현실」등의 대칭 구조가 절묘한 이미지네이션으로 오버랩 되어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다.


도도한 녀석

그 넓은 바다가 무에 좁다고

매일 웅크리고 잤나

등이 굽게


고고(孤高)한 녀석

제 속까지 남에게 다 비추고

정녕 넌 허무(虛無)에 등 돌렸는가

세상 훌륭한 강자(强者)만이 존재했기에

움츠릴 수밖에 없는 약자(弱者)가 되어


                       「새우」全文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살벌하고 냉엄한 투쟁의 현장, 거대한 바다는 생존의 공간이다.  여기에서의 「새우」는 시인자신의 객관적인 자화상일 수도 있다.

하잘 것 없는 작은 몸체조차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가는 새우의 존재, 그러나 꺼릴 것 없이 내장까지 투명한, 즉 무엇 하나 꺼릴 것 없이 가릴 것 없이 살아가는 새우의 웅크린 자세,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보이지 않는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의 결합체이다.

   망망한 바다 속에서 비록 몸체가 작고 허리까지 못 펴고 살지만 주변에 연관된 존재들에게 아무런 피해나 해독을 끼치지 않는 새우에게서 시인 자신의 시인의식을 감지할 수 있다.

“인간은 나의 손에 자신의 거울을 갖고 다닌다.”는 쇼펜하우어의 말, 그 뜻을 일깨우는 일면도 있다.

「세상 훌륭한 강자만이 존재했기에/ 움츠릴 수밖에 없는 약자가 되어」이러한 구절에서 시인은「약자의 슬픔」,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연민의 정, 약자의 슬픔에 대한 미학(美學)을 터득, 그 존재의 의미를 유추하고 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한 떨기 꽃에서 우주의 영혼을 볼”수 있고 “꽃잎에 맺힌 이슬떨기를 왕국과도 바꾸지 않겠다.”던 시인이란 존재에서 생명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 참답게 사는 삶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되새기게 된다.


여보, 나 다녀올게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아, 쓸개 빼놓고 가야지

옜다, 잘 보관해 주오


가면빛 웃음에

요령표 눈치

대가성 칭찬에

아부용 맞장구


허허실실(虛虛實實)

잃은 걸까

얻은 걸까

하루를 부검(剖檢)하는 한잔


여보, 나 왔소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내 쓸개 줘

휴~


          「쓸개」全文


현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적 생활인으로서의 애환과 편린, 타의에 의해 본연의 뜻대로 살 수없는, 즉 쓸개를 지니고 살아가기 힘든 슬픈 자화상을 시니컬하게 객관적인 자세에서 묘사하고 있다.

가장으로서 그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와 본래의 뜻대로 살 수없는, 즉 쓸개를 지니고 살아가기 힘든 심리적 상태를 쓸개에 반영시킨다.

베르그송이란 철학자는 “사색인으로서 행동하고 행동인으로서 사색하라.”고 설파하였다.

   지행합일(知行合一), 그대로 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 여실히 내면의식의 실상을 형상화시킨 의식의 단면도이다.

“돼지가 되어 즐거워하기보다 고민하는 소크라테스의 자세로 살아가”려는 시민의식이 「쓸개」에 담겨져 있다.

시인적인 삶과 그와 역행하는 삶을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 괴리감을 느끼면서 시인 본연의 자세를 지키기 어려운 가장으로서의 애환을 패러디수법을 구사하여 시니컬하게 처리하고 있다.

시인적인 삶과 그에 역행하기를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 겪는 고뇌의 편린이 짙게 배어난다. 쓸개에 대하여 말이 나온 김에,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성어(故事成語)의 의미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다.

작품 「쓸개」를 읽고나면 세계적으로 그 명성을 떨친 베이컨, 1597년에 간행한 그의 수필집에 나오는 이러한 구절도 아울러 떠오른다.

“처자식 있는 자는 운명에 인질 잡힌 셈이다.”

라는, 가장으로서의 고충을 공감하게 된다.



내가

너로 인해

너로 덮여

네게로 보내져서

네가 내게 첨부되어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어

네가 떨어지면

내가 될 수없고

내가 떠나면

네가 설 수없으니

내가 너를 살리느냐

네가 나를 살리느냐

내가 죽어야만 또 다른 내가 된다

네가 살고 네가 사라져야만 내가 선다

널 두고 떠나려니 내가 없고

널 안고 가자니 나는 운다


               「예술」全文


예시(豫示)한 작품 「예술」에는 보편적인 생활인으로서의 강요된 삶과, 예술을 추구하려는 예술인으로서의 삶, 거기에서 파생되는 꿈과 현실에 대한 갈등 구조가 델리케이트하게 대칭된다.

「내가 너를 살리느냐/ 네가 나를 살리느냐/ 내가 죽어야만 또 다른 내가 된다」

이러한 구절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썩”어야 하는 의미와 연결시켜 볼 수도 있다.

「널 두고 떠나려니 내가 없고/ 널 안고 가자니 나는 운다」

예술은 보편적인 삶을 지향하는 데 결코 이로울 수 없다.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는 독설가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진정한 예술가는 처자식을 굶긴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예술을 포기하면 보편적인 육신의 삶은 다소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인이 지향하는 이상향의 길이 아닌 것이다.

이상을 추구하고 예술을 따르자니 현실적으로는 그만큼 많은 제약과 장애들이 따른다.

그러한 데 대한 시인의 회의가 짙게 서려난다.

비련의 주인공 낙랑공주가 호동왕자의 사랑을 따르자니 조국이 울고, 조국을 따르자니 사랑이 우는,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회의하는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가 절실하게 가슴에 다가온다.


         - 지난 2003.7.17.木. 인천의 아파트 14층에서

           세 자녀와 함께 투신한 34세의 손모여인을 哀悼하며


높은 곳을 바라보다가 목이 굳었습니다

낮은 곳을 살피다가 열쇠를 찾았습니다


두 아이 두레박에 실어 먼저 올려 보내고

숨겨둔 날개옷 입고

작은애 가슴에 안은 채 하늘 오른 선녀


땅에서 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정겨운 모습에 기웃댔던 마음

풋풋한 인심에 조각났던 사연


수많은 과거와 현재에 오고간 사람들

그들은 얼마만큼 행복했을까

우리는 얼마만큼 아름다웠을까


따라 살기로 결심한 나무꾼은

그곳에 오르기 위해

홀로 나무를 탔습니다


         「선녀와 나무꾼」全文


「선녀와 나무꾼」은, 제목은 아름다운 전래의 동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내용은 전연 그와 상반된다.

2003년 7월 17일, 34세의 나이로 투신자살한 손 아무개여인을 애도한다는 부제가 붙어있다. 「선녀와 나무꾼」이란 전래의 아름다운 동화의 내용을 손 여인의 자살에 대비, 모순적 대칭 개념, 아이러니와 풍자의 기법으로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가난의 경우 「절대적 가난」과 「상대적 가난」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손 여인의 경우는 최저의 생존권마저 유린되고 박탈당한 절대절망의 상태에서 타의에 의해 등을 떠밀리듯 죽음으로 내몰려야 했던 데 대한 무한한 동정심과 연민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자신의 의사가 반영된 선택된 자살이라기보다 어디에도 구원의 손길을 바랄 수 없는 상태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손 여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각박하고 비정한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고발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빈익빈 부익부, 사치와 향락에 빠진 물질만능주의, 그 와중에서 진정한 가치관을 상실한 채 뿌리 뽑힌 팍팍한 현실 속에 허덕이는 절대빈민의 죽음을 제시, 많은 문제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선녀와 나무꾼」의 아름다운 동화, 꿈을 죽이고 이상을 죽이고, 딛고설 한 뼘의 설 자리조차 없이 죽음으로 등 떠밀린 비참한 주인공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숙연한 자세로 마비된 의식을 일깨우고 성찰(省察)하는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통일로 가는 길」全文


타의(他意)에 의해 찢겨진 국토의 상흔, 그 상처에 대한 치유, 다시 원래의 그 모습 그대로 복원될 그날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 ‘미라보 다리’라는 시로 잘 알려진 기욤 아폴리네르는 비가 오는 이미지를 형상화 하고자 비 오는 모습을 문자를 사선으로 배열시켜 표현한 적이 있다.

초현실적주의나 다다이즘에서 자주 나타나는 기호 등의 수법, 우리나라에서는 이상(李箱)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신 시인은 실험성도 강하여 나름대로의 기법을 성공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38선의 대치된 그 비극적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놓고 그 사이에 시인의 꿈이 담긴 나름대로의 진단과 처방을 이렇게 제시한다.

「네 땅이/ 내 고향

내 문패는/ 네 집

누가 누구에/ 속할 것 없이

하나에 하나가 붙어

큰 하나가 되는 거다」


저 잔혹한 일제 강점기, 민족 정기를 끊고 국토의 혈맥을 끊으려고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던 것처럼 포효하는 범의 기상을 닮은 우리의 국토, 그 허리에 박힌 쇠가시와 모든 쇠붙이, 그것들이 걷히고 다시 하나로 화합될 통일의 그날, 조국의 미래상이 진정 그립다.

작품 「통일로 가는 길」과 관련시켜 「변전실의 개구리」,「윤회」등은 매우 성공적인 작품으로서 시인의식과 관련시켜 상세히 논급하고 싶지만 지면관계로 생략하기로 한다.

이점에 대해 기회가 닿으면 고(稿)를 달리하여 논급하기로 하고 시집을 통독한 총체적인 인상을 요약하면서 펜을 멈추기로 하겠다.


시인 이명신-

지금까지 그의 시인의식에 나타난 고뇌의 편린들을 대하면서 「영혼의 내출혈에서 분출되는 피로 쓰여진 시인의 자화상」이라고 본다.

「뮤-즈」의 뒷그림자를 쫓아 예술이라는, 시라는 환영을 쫓아, 부재하는 제 오계절(五季節)을 쫓아, 현실에 다친 채 속박된 날개를 끝없이 파닥거리는 처절하고 절실한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한 인고 끝에 얻어지는 고통스런 산물(産物)이 바로 이명신 시인의 작품들이다.


흐르는 곡은 Daveed - Orange R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