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
사랑과 게으름을 노래하느니
그밖에 가질 것은 없느니라.
내 비록 여러 나라에 살아봤지만,
사는 데 다른 것은 없느니라.
장미꽃 잎은 슬픔에도 시든다지만
나는 애인이나 차지하겠노라.
만인이 믿지 못할 위대한 짓을
헝가리 같은 데서 하기보다는.
* 에즈라 파운드(Ezra Weston Loomis Pound : 1885-1971)는 20세기 영미시에 끼친 지대한 영향 때문에 '시인의 시인'으로 불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를 지지하는 방송을 하여 전쟁 후에 체포당해 1958년까지 정신병원에서 억류되었다.
이미지즘의 지도자로서 또는 기타의 신시 운동의 추진자가 되어, 시 전문지〈포에트리>·<리틀 리뷰>등의 편집에도 참가했다.
그의 시작은 <사라져 버린 빛을 향하여>(1909)를 베네치아에서 출판한 이래 〈가면〉(1909), 〈환희〉(1909), 〈즉답〉(1912), 〈위장〉(1916) 등으로 잇달았다.
가장 중요한 작업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의 경험을 형상화한 〈섹스투스 프로페르티우스에 대한 경의〉(1919), 〈휴 셀윈 모벌리〉(1920)를 출판한 것이다.
〈섹스투스 프로페르티우스에 대한 경의〉는 프로페르티우스와 로마 제국을 통해 1917년의 대영제국에 대해 논평한 것이며, 〈휴 셀윈 모벌리〉는 1919년 영국 문단 문화의 한 측면을 정교하게 새겨 놓은 '초상'으로서 20세기에 가장 찬사를 받은 시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파운드는 뛰어나고 민감한 언어 감각을 지니고, 시를 순수하게 언어의 예술로 추구하였다.
그 표현에서 곧잘 고전에의 암시나 비유 또는 패러디가 미묘하게 얽혀져 있는데, 그렇지 않을 때에도 엘리어트가 그를 가리켜 '아주 뛰어난 쟁이'라고 부르고 있는 바와 같이 정확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기교의 소유자임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