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미국

샌드버그

높은바위 2015. 5. 25. 13:39

 

 

            시카고

 

세계를 위한 돼지 도살자,

연장의 제작자, 밀을 쌓아 올리는 자,

철도 도박자, 온 나라의 화물 취급자.

떠들썩하고 꺼칠한 목소리에 왁자지껄한

어깨가 딱 벌어진 건장한 도시.

 

사람들은 너를 가리켜 악의 도시라 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짙은 화장을 한 너의 여인들이 가스등 밑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사람들은 너를 가리켜 흉악한 도시라 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갱이 사람을 죽이고, 또한 사람을 죽이기 위하여

석방되어 가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사람들은 너를 가리켜 잔인하다고 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부녀자와 어린이들의 얼굴에 심한 굶주림이 깃들여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나의 이 도시를 비웃는 사람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비웃음을 돌린 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처럼 잔뜩 고개를 쳐들고, 활발하면서 조잡하며 그리고 교활하다는 사실을

이렇듯 자랑스럽게 노래하고 있는 도시가 달리 있다면 어서 내게 보여 다오.

일에 뒤이어 일이 겹치는 고역 속에서 매력 있는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조그맣고 연약한 다른 도시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키 큰 강타자가 여기 있다.

공격을 하려고 혀를 날름거리는 개와도 같이 사납고,

황야와 투쟁하고 있는 야만인처럼 교묘하게

맨 대가리로

삽질을 하며

파괴하고

계획하고

건설하고, 부수고, 다시 건설하고

매연에 싸여 입에는 온통 먼지투성이가 된 채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고,

운명의 가혹한 무거운 짐 아래서 청년처럼 웃으며

전쟁에 패해 본 일이 없는 어수룩한 전사들처럼 웃고 있으며,

그 손목 아래에는 국민의 맥박이 있고,

자기 늑골 아래에는 국민의 심장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웃으면서,

껄껄거린다!

반나체로 땀을 흘리면서, 돼지의 도살자이며,

연장의 제작자, 밀을 쌓아 올리는 자,

철도 도박자, 온 나라의 화물 취급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청년과 같이 떠들썩하게 꺼칠한 목소리로 웃고 있다.

 

 

*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 : 1878-1967)는 스웨덴계 이민의 아들로 일리노이주(州)에서 출생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어려서부터 갖가지 노동에 종사하다가 아메리카-에스파냐 전쟁에 종군하였다.

제대 후에는 고향에 있는 롬버드대학에서 고학으로 공부하였으며, 그 뒤 신문기자가 되어 정치운동에도 관여하는 한편, 시작(詩作)에도 손을 대었다.

1916년에 <시카고>를 포함하여 중서부 지방의 자연을 노래한 작품을 모아 <시카고 시집(Chicago Poems)>을 출판, 뒤이어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사람(Cornhuskers)>(1918), <연기와 강철(Smoke and Steel)>(1920), <전(全)시집(Complete Poems)>(1950, 퓰리처상 수상) 등을 간행하였다.

그는 또 링컨 연구자로도 유명하여, 대작 <링컨, 대초원 시대(Abraham Lincoln:the Prairie Years)>(2권, 1926), <링컨, 남북전쟁 시대(Abraham Lincoln:the War Years)>(4권, 1939, 퓰리처상 수상)를 썼고, 이 밖에 각지의 민요와 전설을 모은 <아메리카 민요집(The American Songbag)>(1927), 자서전 <언제나 젊은 이방인들(Always the Young Strangers)>(1953) 등을 남겼다.

 

이 시는 <시카고 시집(Chicago Poems)>(1916)의 중심이 되는 작품으로서, 샌드버그는 이 시집에 의하여 미국 시인 중 현대시의 일류 시인으로서의 확고부동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14년 H·먼토가 주재하는 시 잡지 <Poetry : A Magazine of Verse>에 다른 아홉편의 그의 작품과 함께였는데, 당시 문단에 크나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모더니즘의 새로운 시였다.

시카고라는 신흥도시를 건장한 사나이에다 비유하면서, 그 조잡한 면이나 야만스러운 면을 인정하면서도, 부두 노동자나 트럭 운전사들이 쓰는 속어나 비어(卑語)까지도 시에 도입해 '아름다운 도시'로 찬미한 이 힘찬 시는 전통적인 시어(詩語)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의 시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린 것이다.

샌드버그는 휘트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자유시 속에다 은어를 사용하면서 민중을 노래했고, 미국 중서부의 생활을 배경으로 하여 지난 날의 시가 지녔던 개념을 무시하였으며, 주제도 사용하는 언어도 모두 일상적인 것에서 골랐다.

B.J. Thomas -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