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아 한 잔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
그것은 성실하고 열심한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끝없는 논쟁 후의
차갑게 식어버린 코코아 한 모금을 홀짝이며
혀 끝에 닿는 그 씁쓸한 맛깔로,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프고도 슬픈 마음을.
(1911.6.15)
* * * * * * * * * * * * * * *
*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년 2월 20일 ~ 1912년 4월 13일)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시인 겸 문학평론가이다.
백석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시인이다.
지금은 죽어 일본 하코다데에 묻혀 있는 시인.
교사 신분으로, 학교개혁을 위해 학생들을 선동하였다는 죄목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시인이었다(당시 일본은 국가적으로는 부국강병주의가, 사회적으로는 개인주의가 팽배했다. 말이야 '개인주의'였겠지만 '국가'가 강조되던 시기의 사람들로서는 자신의 내면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당시 강화되어 가던 일본의 군국주의 교육 - 군인칙유(軍人勅諭)(1882), 교육칙어(敎育勅語)(1890) - 아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모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교장 배척 스트라이크를 일으켜 학교에서 쫓겨난다.
실직한 이시카와는 그 뒤 별다른 직장도 구하지 못한 채 궁핍한 생활을 감내해야만 했고,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그의 아내 세츠코도 집을 나가버리고 만다.
시인은 어머니를 매우 사랑했는데 늙은 어머니를 업어보고 너무나 가벼워진 어머니가 애처로운 나머지 세 걸음을 걷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이시카와의 삶은 궁핍했다.
그는 너무나 궁핍하게 산 나머지 폐결핵에 걸렸고,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시인의 어머니 역시 그가 세상을 떠난 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의 아내 세츠코도 그 이듬해에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시는 데뷔 초엔 젊은이의 이상을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 표현해 갈채를 받았지만, 죽기 몇 년 전부터는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민중적 경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도키 젠마로(土岐善棧) 등과 더불어 신잡지 <나무와 열매>를 기획하는 등 청년 계몽을 위해 노력했지만, 몸에 깃든 병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숨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