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러시아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옙투셴코(Евге́н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Евтуше́нко)

높은바위 2023. 3. 13. 07:07

 

          거짓말

 

아이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네

허위를 진실인 양 말하는 것도 잘못이지

아이들에게 천국에 하느님이 계시고

이 세상이 잘 굴러간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야

아이들은 자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안다네, 아이들도 인간이거든

아이들에게 숱한 어려움에 대해 말해주게

앞으로 일어날 일만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분명히 보게 해줘야 하네

살면서 맞닥뜨리게 될 장애와 난관에 대해 말해주게

마주치게 될 슬픔과 고통에 대해 말해주게

지옥 같은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려주게

행복의 대가를 아는 자만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은가

잘못을 알면서도 용서해서는 안 되네

그냥 두면 반복되고 늘어나

나중에 우리 학생들은

우리가 용서했다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 * * * * * * * * * * * * *

 

*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옙투셴코(Евге́н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Евтуше́нко, 1932년 7월 18일 ~ 2017년 4월 1일)는 소련~러시아의 시인, 문인, 영화 제작자이다.

1933년 7월 18일 이르쿠츠크주 출생.

옙투셴코는 어머니의 성으로 원래 성은 강누스(Гангнус, Gangnus)이다.

1961년에 바비야르 학살을 주제로 하여 쓴 작품, 바비 야르(Бабий Яр)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의 가사로 사용되기도 한 그의 대표작이며, 이 작품으로 1963년의 노벨문학상 후보가 되기도 했다.



19세의 나이에 '미래의 전망'이라는 첫 시집으로 소련 작가협회에 최연소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며 일찌감치 작가로서의 재능을 선보였다.

이후 1952년부터 모스크바 고리키문학대학에서 공부했으나 1957년 발표한 시 '지마역'이 개인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퇴학당했다.



1961년에 발표된 시  '바비 야르'라는 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1943년까지 많은 유태인, 러시아인 등이 나치 독일군에 학살당했던 키예프 북서부 바비 야르라는 곳에 소련이 인근 공장의 폐기물 매립장을 세우려 하는 것에 대한 비판, 나아가 바비 야르 사건에 대해서 함구령을 내려 사건을 잊히도록 하려는 소련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전에도 그는 스탈린이 죽었을 때 "우리는 스탈린이 다시는 그의 무덤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반체제적인 작가로 몰려 흐루쇼프 서기장 시절에는 소련 당국의 탄압을 많이 받았다.

1971년 흐루쇼프는 죽기 일주일 전 먼저 전화를 걸어 사저로 불러서 "나는 당신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당신을 탄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시인이라서 진실을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정치가였다. 정치가라는 것이 얼마나 역겨운 직업인지 당신은 모를 거다. 정치가는 쫓겨나지 않으려고, 그저 소리 지르는 수밖에 없는 자리다"라며 옙투셴코에 대한 탄압을 사과했고, 옙투셴코는 흐루쇼프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렇게 흐루쇼프 시절 소련 당국을 거침없이 비판했지만, 1964년 흐루쇼프가 권력에서 밀려난 뒤부턴 옙투셴코의 저항 정신도 무뎌지고 체제 순응주의자로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91년 옛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공산당 정부가 제공하는 많은 특혜를 받았고, 국외여행도 비교적 자유롭게 하며 많은 독자를 확보했다.



한창 독자가 많았을 때는 미국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비롯해 러시아 내외의 대형 운동장에서 수십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시낭송회를 열며 팝스타와 같은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1989년에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며 2007년부터 미국 털사 대학교와 뉴욕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2017년 4월 1일 털사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