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러시아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

높은바위 2023. 4. 7. 05:59

 

겨울밤


눈보라가 휘몰아쳤지.
세상 끝에서 끝까지 휩쓸었지.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여름날 날벌레 떼가
날개 치며 불꽃으로 달려들듯
밖에서는 눈송이들이 창을 두드리며
날아들고 있었네.
눈보라는 유리창 위에
둥근 원과 화살들을 만들었고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 비친 천장에는
일그러진 그림자들
엇갈린 팔과 엇갈린 다리처럼
운명이 얽혔네.

그리고 장화 두 짝

바닥에 투둑 떨어지고
촛농이 눈물 되어 촛대서
옷 위로 방울져 떨어졌네.
그리고 모든 것은 눈안개 속에
희뿌옇게 사라져 갔고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촛불 날리고
유혹의 불꽃은
천사처럼 두 날개를 추켜올렸지.
십자가 형상으로.
눈보라는 2월 내내 휘몰아쳤지.
그리고 쉬임 없이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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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 보리스 빠스쩨르나크, 1890년 2월 10일 ~ 1960년 5월 30일)는 소련의 시인, 산문작가, 현대 러시아 문학의 대가 중 한 사람.


파스테르나크는 예술가였던 아버지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와 피아니스트였던 로잘리야 카우프만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나서 자라고 대부분의 생애를 모스크바에서 보냈다.

그는 유년시절을 매우 풍요로운 문화․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보냈다.

그는 예술과 음악에 대한 재능을 어렸을 때부터 보였으며 스끄랴빈의 지도하에서 1903년부터 1909년까지 6년간 작곡을 수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직업에 관해 고민한 끝에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의 철학부에서 1908년부터 1913년까지 수학하였다.

신-칸트주의에 매료되었던 그는 1912년 독일의 마부르크 대학에서 여름 학기에 헤르만 코힌의 문하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러시아 문학과의 접촉은 그가 블록과 벨르이 등과 같은 러시아 상징주의 문학을 접하면서부터였고 입센과 릴케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독파하면서 문학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키워나갔다.

파스테르나크는 릴케를 러시아어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1909년 그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자서전적인 시들과 산문을 집필하였다.

그가 맨 처음으로 출판을 한 것은 1913년의 일이었으며 1914년에는 첫 시집인 『구름 속의 닮은 사람들 Близнец в тучках』이 출판되었다.

 

같은 해에 그는 미래주의파들과 동조하여 "원심력"에 가담을 하였으며 1917년까지 논쟁적인 글들과 미래주의적인 시들을 발표하였다.

상징주의자들의 "도시"라는 주제와 미래주의자들의 요소는 파스테르나크의 천재적인 재능을 무색게 하지는 못했다.

이 시기에 파스테르나크는 그의 시에서 두운, 각운의 새로움, 리듬과 어휘의 다양성 그리고 달인의 경지에 이른 상징등을 보여주었다.

파스테르나크는 1914년에 마야꼬프스끼를 만났으며 이 시기 전쟁기에 쓰인 시들은 마야꼬프스끼의 영향을 받았다.

두 산문 『아펠레스의 특징 Апеллесова черта』(1915년 집필, 1918년 출판)과 『뚤라에서 온 편지 Письма из Тулы』(1918년 집필, 1922년 출판)는 그의 "낭만주의적인 방법"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 작품이며 그의 논문 "몇몇 제안 Несколько положении"(1922)도 그의 미학관을 다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