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러시아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

높은바위 2023. 4. 10. 06:08

 

유명해진다 함은

 

유명해진다 함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니다

고문서를 가져갈 필요도 없고,

원고에 마음 쓸 필요도 없다.

 

창작의 목적은 자기 몰두지,

큰 소동도 성공도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람들의 입에 소문 나는 일은 수치.

 

그러나 사칭하지 말며 살아야 하고,

공간의 사랑에 몰입하여,

미래의 부름에 귀 기울이기 위해,

끝내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종이가 아니라 운명에

여백을 남겨야 한다,

완전한 삶이라는 장소와 장들을

책의 여백에 선 그어 놓으면서.

 

무명에 잠기거나,

무명에 자기 발걸음을 숨겨야 한다.

지형이 안갯속에 숨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남들이 걷던 삶의 흔적을 따라

한 걸음씩 너의 길을 걸어가되,

너 자신은 승리와 패배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외로운 운명의 몫이라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는 듯이, 살아야 하며,

끝까지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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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 보리스 빠스쩨르나크, 1890년 2월 10일 ~ 1960년 5월 30일)는 소련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파스테르나크는 1890년 2월 10일 모스크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예술 학교 교수이자 화가인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였다.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인 로자 카우프만(Rosa Kaufman)였다.

파스테르나크는 국제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집에 들렀던 방문객으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라이너 마리아 릴케, 레프 톨스토이가 있다.

 

그의 이웃이었던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의 영향으로 파스테르나크는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모스크바 음악 학교(Moscow Conservatory)에 입학했다.

1910년 그는 돌연 학교를 떠나 마르부르크 대학(University of Marburg)에서 신칸트주의(Neo-Kantianism) 철학자인 헤르만 코헨(Hermann Cohen)과 니콜라이 하트만(Nicolai Hartmann) 지도 아래 공부했다.

학자가 되기 위해 온 것이었지만 철학을 직업으로 삼길 포기한 후, 1914년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러시아 미래파인 알렉산더 블록의 영향을 받은 그의 첫 시집은 같은 해 말에 출판됐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그는 화학 공장에서 일하며 가르쳤다.

이곳의 경험이 닥터 지바고에 반영돼 있다.

그의 친척, 친구들 대다수와 달리, 그는 혁명 후에도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혁명이 가져온 새로운 사상과 가능성에 이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