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아쉬움

높은바위 2024. 4. 8. 05:51

 

"아쉬움"이란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거나, 필요한 것이 모자라거나 없어서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라고 한다.

세상사가 언제나 만족한 것은 아니다.

아쉬움이 있고 부족함이 있어야 심기일전( 心機一轉 ) 발동의 활력이 된다.

어떤 독일의 학자는 현대의 병을 가리켜 부족에서 오는 병이 아니라 과다(過多)에서 오는 병이라고 했다.

많이 먹고, 많이 소비하고, 많이 생산하고, 많이 즐겼기 때문에 육체나 정신이 항상 건전치 못한 상태다.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즐거움[樂]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고통이 없으면 즐거움이 즐거움인 줄 모르고, 출산의 고통이 없이 모성애(母性愛)를 어찌 알겠는가.

남보다 먼저, 남보다 높이, 남보다 탁월하게 등의 경쟁 사회가 요즘 사람들을 조그마한 아쉬움도 참지 못하게 만든다.

풍요로운 시대를 별 고통을 모르고 살아서 그런 것인가, 고통을 피해서 물질적 안락만을 추구해서인가, 정신적 궁극적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도 같다.

허약한 자기의 틀 속에 자신을 안주시키고, 그 침해를 두려워하는 불안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일까?

아쉬워야 우리의 혼(魂)이 눈을 뜬다.

아쉬움이 있어야 우리의 지혜가 눈을 뜬다.

아쉬워야 우리의 혼(魂)이 진실해진다.

 

간디는 이렇게 말한다.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간을 모른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필요 없는 물건이나 재화에 매여, 시각이나 욕망의 만족만을 위하여 재화를 사랑하고 우리의 혼(魂)이 풍요 속에 멍들게 한다.

우리의 혼(魂)은 우리의 마음이 비어있어야 눈을 뜬다.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생의(生意)가 나타나지 않는다.

 

부처는 갈아입을 옷 한 벌을 비구들의 재산 목록으로 정했으며,

예수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늘에 나는 새 한 마리까지도 아버지께서 먹이고 입히신다."라고 했다.

버리는 자는 참으로 얻는 것이다

무소유(無所有) 자(者) 라야 천하의 것이 제 것이다.

우리는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고통하고 수고하는가.

그로 인해 내 맑은 혼(魂)이 얼마나 오염되는가.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필요한 것만 가지란 말이다.

아쉬운 것은 남겨두라는 말이다.

여백이 있어야 그림을 그린다.

아쉬움이 있어야 내 생각이 쉴 수 있다.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하는 씨앗이다.

아쉬움은 부족이 아니다. 

성취와 만족을 심는 터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