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비대륙성기질의 한국인과 오정(五丁)

높은바위 2025. 4. 19. 07:07

여수 오충사(五忠祠)와 창원 정씨 가족 묘역

 

한국인은 몬슨 기후(氣候)와 대륙성(大陸性) 풍토가 빚어놓은 대륙성기질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아왔다.

변화에 대해 지그시 참는 지구력과 무감동은 대륙성기질이다.

무감동하기에 피로를 못 느끼고 지친다는 법도 없다.

또 무정부(無政府)의 생활에 철저하여, 국가의 보호력을 생각질 않고 살아가는 것도 대륙기질이다.

즉 자기 자신의 힘에 의존한다.

자기 자신의 힘이 약소하였을 때, 저항할 수 없는 강대한 힘에 부딪치면 지극히 솔직하게 인종(忍從)한다.

 

공자는 치국(治國)보다 치가(治家)를 선행했고, 불타(佛陀)는 정부를 도적이라고 막말하고 있음은 이 기질에 영합된 한 도리다.

 

임진왜란에 왜병들이 진격하는데 한 농부는, 나라가 짓밟힌다는 생각보다는 그 왜병들이 자기네 보리밭을 밟고 가는 것에, 보다 더 흥분하고 화를 내었다.

한국인은 대륙적이라 하지만 어느 만큼만이 대륙적이었다.

해양성기질이라고 하는 대륙성기질이 아닌 만큼의 기질을 발견해 보자.

 

천주교 신앙은 한국에서 이례적인 감격을 불러일으켰다.

바티칸에서 깜짝 놀랄 만큼 비장한 순교자가 속출하였다.

이 순수한 순교자, 그 심정상의 혁명이 그들 생명보다 한결 값있는 것으로 확신한 이들의 속출은, 한국인에게 있어 잠재돼 있던 해양성기질의 한 노출이었다.

 

대륙성기질의 표본인 중국에서는 천주교가 심정전체의 혁명을 일으킬 만큼 강한 자극은 주질 못했다.

청조(淸朝)의 기독교박해 때에도 우리 한국과 같은 순교의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었다.

2차 대전 후 국부군들이 공산군에서 그들의 귀순을 돈으로 흥정했던 숱한 케이스도 그런 기질의 한 표현이다.

그러기에 중국사람들은 나라가 망한다고 자결 같은 건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인은 그러한 만큼은 대륙성이 아니었다.

 

왜란 때 적의 수군(水軍)이 거북선만큼 무서워했다는 여천사정(川四丁) 정철(丁哲=守門將수문장), 그의 아우 정린(丁麟=前驅將전구장), 철의 사촌동생 정춘(丁春=遊擊將유격장), 철의 종질(從姪) 정대수(丁大水=巡哨將순초장)는 가산을 기울여 수군의병(水軍義兵)을 모으고 수사(水使)로 있던 이순신의 휘하에 들어가, 왜선 일백, 왜병 삼천을 무찌르고 전사한 분들이다.

이곳 창원 정 씨(昌原 丁氏) 종손인 정대수(丁大水)는 노모와 이순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고, 또 가통을 위해 종군 않기로 합의하였던 것이나 몰래 뛰어나와 기공(奇功)을 세우고 전사하였다.

이 한 가문에서 넷이 전사하자, 인(麟)의 아들 언신은 그의 아버지 시체를 거두어 싣고, 단신 소주(小舟)로 적진에 뛰어들었다.

혈연의 시체로 하여금 그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

발작적이고 광적인 용맹으로 적선 30여 척을 기습 침몰시키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써, 사정(四丁)에 일정(一丁)을 더 보탰던 것이다.

 

이같이 죽어간 정(丁)씨 일가의 충절은 이곳에서 충무공보다 더 전설적이었다.

도저히 무감동, 무정부의 대륙성 기질로는 이 <오정(五丁)>을 해석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