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히사시 3

혼다 히사시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서 만개한 벚꽃나무에 기대어 있을 때 해체된 말의 앞다리가 달려왔다 뒤이어 뒷다리도 달려왔다 그 뒤를 이어 하늘에서 떨어진 몸통이 네 다리 위에 올라앉았고 머리가 없는 채로 말은 잠자코 서 있다 이윽고 짐수레를 끌고 노파가 다가와서 짐받이에 싣고 온 말의 머리를 나의 발아래에 내려놓고 갔다 나는 말의 머리를 제자리에 붙여 놓고 다시 말을 보았다 그 말은 내가 소년이었을 적에 사산(死産)으로 해체된 모태에서 끌려 나온 말이었다 말은 이제야 처음으로 보는 걸 허락받은 자와 같았다 나는 침으로 상처를 닦아 주고 손을 번쩍 들어 말의 엉덩이를 쳤다 말은 우렁차게 울고 나서 들판 끝으로 달려갔다 그때 봄 폭풍으로 한꺼번에 지던 벚꽃 꽃잎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벚꽃나무가 문득 비틀거리는 것을 ..

혼다 히사시

피에타(Pietà) 오늘, 쓸쓸함은 쓰라리고 밝고, 푸르게 빛나는 소금 같다 네 안에 있는 숲의 거처 너를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있지만 끝내, 네가 보이지 않는다 젖은 모래 같은 눈 안쪽에 너를 불러내려 해도 끝내, 너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를 둘러싸는 나무들 우물거리는 꿩과 비둘기의 울음 소리 나가 버린 후 돌아오지 않는 고양이 탁류에 삼키어 버린 산기슭의 마을 한 없이 늘어가는 죽은 자의 숫자 오늘, 슬픔은 깊고 끝없이, 높으며 넓은 하늘 같다 마른 바람에 부쳐 보내고 싶은 한 개의 푸른 과일 하지만, 네 있는 곳을 모른다 네 발 밑의 작은 산골짜기에서 너를 쳐다보며 눈을 크게 뜨고 있지만 네 시초가 보이지 않는다 * * * * * * * * * * * * * * 시인의 아홉 번째 개인 시집인 『풀의 영..

혼다 히사시

배 그 배는 이미 항구마다, 아니다 그 바다 자체에서조차 거절당했다 그 배는 이미 푸르게 넘실대는 바닷물에 잊혀져 활 모양의 수평선에 버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그 사람의 슬픈 기억의 바다에 떠 있고 돛대는 묶여 있다 그 배는 이미 배를 벗어난 배 이름을 명사로서 부를 수 없는 배 어쩌면 그 사람의 새가 되고 싶다는 상념을 닮은 모습 혹은 머무를 수 없는 비망(非望) 그럼에도 쇠퇴한 별빛을 쌓아둔 채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바다에서 태어나 저 멀리 바다를 초월한 바다로 향하는 배 한 척 * * * * * * * * * * * * * * * 혼다 히사시는 1947년 큐슈 미야자키 현(宮崎縣)에서 태어나 26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제1회 이토세이유 상과 제42회 H씨상, 제47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