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76. 무 등 을 보며

높은바위 2005. 7. 11. 06:04
 

76. 무 등 을   보며

                                         서 정 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산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현대공론. 1954. 8.

 

* 이 시는 6.25의 상처와 물질적 궁핍이 극심한 가운데 무등산의 크고 의젓한 자태를 삶의 모형으로 삼아 쓴 작품으로, 조선대 교수로 재직시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