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54. 絶頂(절정)

높은바위 2024. 6. 2. 10:00

54. 絶頂(절정)

 

                                             이육사(李陸史, 1904.4.4~1944.1.16)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1940. 문장

 

* 이 시는문장(1930)에 발표된 시이다. ‘의열단의 일원으로 치열한 독립 운동을 벌였던 이육사의 자세가 잘 나타나 있는 시이다.

고원, 북방은 모두 매운 계절의 채찍’, 즉 일제에 의해 밀려온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것에 저항하는 공간인데, 이육사는 이 공간을 단 한번의 실수에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서릿발 칼날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의 공간에서 일제에 저항하는 서정적 자아의 태도는 무릎을 꿇을 존재를 발견할 수 없는, 그야말로 한치의 굴욕도 용서치 않는 지사적 태도라 할 수 있다.

1-3연까지의 치열성, 고통은 4연에 이르러서 완전히 극복된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는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겨울은 일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지만, 어떤 강인한 존재를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강철은 강인성을, ‘무지개는 희망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구절을 완벽한 역설이라 할 수 있다.

강철의 강인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깨달음이 이 시의 참된 주제라 할 수 있다.

역설은 때때로 모순 형용과 비슷하지만, 모순 형용은 수식어와 피수식어 사이의 모순 관계만 가진 것이므로 역설보다 범위가 좁다. '푸른 태양'이니 '찬란한 슬픔'이니 '빛나는 어둠'이니 하는 표현들이 이에 속한다. 이런 표현(역설이나 모순 형용)은 상식적인 논리로는 모순되지만, 그렇게 밖에 나타낼 수 없는 특이한 경험이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도 때때로 쓰인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1)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2) 아는 것이 병이다(識字憂患).

3)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모두 틀림없이 미래의 시간 속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4) 시를 쓰면 이미 시가 아니다.

5)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6)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라. 그것이 아는 것이다. (논어)

7) 님은 갔지만,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8)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읍니다. /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읍니다. 오오 이별이여. / ()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한용운, '이별은 미의 창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