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3. 나의 寢室로

높은바위 2005. 5. 31. 06:16
 

3. 나의 寢室로

                     이 상 화(1901-1943)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야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 뭇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욱 ---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맘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얄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르매가, 도까비처럼, 발도 없이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에 내 목을 안어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이도 없느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

  내 몸에 피란 피 --- 가슴에 샘이, 말라버린 듯, 마음과 목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 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네야 알련만 …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1923년, 백조



* 백조파 시인들의 낭만적 열정은 까닭 모를 슬픔과 그리움으로 나타났으며 죽음의 세계를 동경하고 예찬까지 한다. 이런 경향은 1920년대 초기에 등장한 낭만주의 시인들의 공통된 주제였다. 이상화는그중에서도 특히 강한 목소리로 ‘나의 침실로’와 같은 작품을 썼다. 이것은 당시 3.1운동 직후 피페했던 시대 상황이 지식인들에게 가져다 주었던 절망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에 나타나는 죽음의 예찬과 절망은 곧 추하고 괴로운 현실을 부정하려는 의식이며,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의 세계를 향한 염원의 역설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마돈나의 상징적 의미와 침실의 의미는 이 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마돈나는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일 수도 있고, 서정적 자아의 사랑하는 젊은 여성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시대 상황에 미루어 보면, 잃어버린 조국을 상징할 수도 있다. 이에서 알 수 있는 마돈나의 공통적인 의미는 구원의 여성상이다. 20대 청년의 격렬한 감정, 충동과 나라 잃은 민족적 울분이 복합되어 아름답고 안온한 안식처로써 사랑하는 여인이 마돈나로 표상되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리고 침실의 의미는 ‘오랜 나라’, ‘부활의 동굴’,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침실’, ‘아름답고 오랜 거기’ 등으로 변주되어 있다. 이러한 침실의 의미는 密室, 도피처, 안식처, 조국의 광복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10연, 11연에서 표현되듯. 침실의 세계는 뉘우침과 두려움의 결단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외나무다리 저편의 꿈과 부활의 동굴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해 피폐해진 정신에 안식과 활력을 주는 재생의 장소가 바로 침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