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51.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높은바위 2005. 7. 31. 09:38
 

151.   문의(文義) 마을1)에 가서

 

                                         고 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무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서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을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시집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1974)

 

 


1) 문의 마을 : 충북 청원군 대청 호반의 마을. 지금은 대청댐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