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50. 화 살

높은바위 2005. 7. 31. 09:35
 

150.   화 살

 

                   고 은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년 동안 가진 것

  몇 십년 동안 누린 것

  몇 십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뮛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1978. ꡔ새벽길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