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45. 가을에

높은바위 2005. 7. 29. 08:09
 

145. 가을에

 

                                  정 한 모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 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낸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같은 그 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하던 추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라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시집 ‘여백(餘白)을 위한 서정’(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