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그외 나라

페루:세사르 바예호(César Abraham Vallejo Mendoza)

높은바위 2023. 7. 22. 05:07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나는 오늘 이 고통을 세사르 바예호로 겪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가로도, 인간으로도, 살아 있는 존재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무신론자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고통스러워할 뿐입니다. 내가 세사르 바예호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술가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이며, 인간이 아니었다 해도,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단지 고통을 겪을 뿐입니다.

지금 나는 이유 없이 아픕니다. 나의 아픔은 너무나 깊은 것이어서 원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 원인이 되다 그만둔 그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요? 아무것도 그 원인이 아닙니다만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닌 것 또한 없습니다. 왜 이 아픔은 저절로 생겨난 걸까요? 내 아픔은 북녘바람의 것이며 동시에 남녘바람의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이상야릇한 새들이 바람을 품어 낳는 중성의 알이라고나 할까요? 내 연인이 죽었다 해도, 이 아픔은 똑같을 것입니다. 목을 잘랐다 해도 역시 똑같은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삶이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다 해도, 역시 이 아픔은 똑같았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위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저 단지 괴로울 따름입니다.

배고픈 사람의 고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의 배고픔이 나의 고통과는 먼 것임을 봅니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 굶게 된다면, 적어도 내 무덤에서는 억새풀이라도 하나 자라겠지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샘도 없고 닳지도 않는 나의 피에 비하면 그대의 피는 얼마나 풍요로운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아버지나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지금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이 고통은 아버지도 아들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밤이 되기에는 등이 부족하고, 새벽이 되기에는 가슴이 남아돕니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두면 빛나지 않을 것이고, 밝은 방에 두면 그림자가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지 간에 오늘 나는 괴롭습니다. 오늘은 그저 괴로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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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사르 아브라함 바예호 멘도사(César Abraham Vallejo Mendoza, 1892년 3월 16일 ~ 1938년 4월 15일(향년 46세)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는 페루의 시인이다.

그는 1892년 페루 북부 라리베르타르주의 광산촌 산티아고 데 추코에서 태어났다.

인디오와 메스티소 사이에서 태어난 바예호는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애환을 뼛속 깊이 지닌 채 성장했다.

10대 중반부터 일찍이 집을 떠나 공부한 그는 리마에 있는 산마르코스주 국립대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 생활로 겨우겨우 버티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바예호에게 부정적으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가 교사 생활을 하던 중 방학 때 고향에 갔다가, 방화범이라는 누명을 씌게 되어 도주했지만, 결국 체포되어 감옥 생활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주변 문인들의 탄원으로 석방된 그는 조국을 등지고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바예호는 파리에서 가난한 생활을 보내며 시인으로 활동했다.

또한 그는 반파시스트 운동에 가담하는 등 본격적인 사회 참여를 했는데, 소련을 세 차례 방문하고 공산주의 신문에 글을 기고한 것이 문제가 되어 1930년 추방을 당했다.

쫓겨난 그는 스페인으로 본거지를 옮겼고, 그곳에서 스페인 공산당에 가입하는 등 자신의 사회 참여 행보를 이어 갔다.

그는 맹목적인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레닌, 스탈린 등에게는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2년 뒤인 1932년, 바예호는 다시 파리로 돌아와 정식으로 영주권을 얻었고, 스페인 내전으로 스페인을 방문한 것을 제외한 평생을 파리에서 지냈다.

총 4권의 짧은 시집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방가르드 현대시의 거장으로, 라틴아메리카 아방가르드 문학의 대표 시인이자 페루의 국민적인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자신의 가난하고 불운한 삶에 영향을 받아 전체적으로 작품 분위기가 암울한 편이다.

그러나 단순히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자신만의 신조어를 만들고, 철자와 구문을 의도적으로 바꾸며,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들을 시에 쓰는 등 초현실주의적인 미학을 가지고 있다.

 

<시집 목록>

  • 검은 전령(Los heraldos negros) (1919년)
  • 트릴세(Trilce) (1922년)
  •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España, Aparta de Mí Este Cáliz) (1937년)
  • 인간의 노래(Poemas Humanos) (1939년)

 

* 과거 페루 1만잉티 지폐의 인물이었고, 체 게바라가 사랑한 시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시인의 출신 지역이기도 한 페루의 북부 도시 '트루히요'에 그의 이름을 딴 '세사르 바예호 대학교'가 있다.
페루에서는 나름대로 명문의 대학교이다.
 
페루의 최상위 축구 리그인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축구팀 중 시인의 이름을 딴 'CD 우니베르시다드 세사르 바예호'라는 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