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그외 나라

페루:세사르 바예호(César Abraham Vallejo Mendoza)

높은바위 2023. 7. 21. 06:54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

항상 산다는 것이 좋았었는데, 늘 그렇게 말해왔는데.

내 전신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내 말 뒤에 숨어 있는

혀에 한 방을 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오늘은 턱이 내려와 있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잠시 머물게 된 이 바지 안에서 나 자신에게 말한다.

‘그리도 많이 살았건만 결코 살지 않았다니!’

‘그리도 많은 세월이었건만 또 다른 세월이 기다린다니!’

우리 부모님들은 돌 밑에 묻히셨다.

부모님들의 서글픈 기지개는 아직 끝나지 았았고,

형제들, 나의 형제들은 온전한데,

조끼 입고 서 있는 나라는 존재.

나는 산다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삶에는 나의 사랑하는 죽음이 있어야 하고,

커피를 마시며 파리의 무성한 밤나무를 바라보면서

이런 말을 해야 한다.

‘이거와 저거는 눈, 저것과 이것은 이마…’

그리고 이렇게 되풀이한다.

‘그렇게 많은 날을 살아왔건만 곡조는 똑같다.’

‘그렇게 많은 해를 지내왔건만, 늘, 항상, 언제나…’

아까 조끼라고 했지. 부분, 전신,

열망이라고도 했지. ‘울지 않으려고’라는 말을 거의 할 뻔했지.

저 옆 병원에서 정말 많이 아파서 고생깨나 했지.

내 온몸을 아래에서 위까지 다 훑어본 것은

기분 나쁜 일이긴 하지만, 뭐 괜찮아.

엎드려서 사는 거라 해도 산다는 것은 어쨌든 늘 기분 좋은 일일 거야.

‘그리도 많이 살았건만 결코 살지 않았다니! 그리도 많은

세월이었건만 늘, 언제나 항상, 항시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니!’

이렇게 나는 늘 말해왔고 지금도 말하니 말이다.

 

* * * * * * * * * * * * * *

 

* 세사르 아브라함 바예호 멘도사(César Abraham Vallejo Mendoza, 1892년 3월 16일 ~ 1938년 4월 15일(향년 46세)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는 페루의 시인이다.

그는 1892년 페루 북부 라리베르타르주의 광산촌 산티아고 데 추코에서 태어났다.

인디오와 메스티소 사이에서 태어난 바예호는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애환을 뼛속 깊이 지닌 채 성장했다.

10대 중반부터 일찍이 집을 떠나 공부한 그는 리마에 있는 산마르코스주 국립대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 생활로 겨우겨우 버티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바예호에게 부정적으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가 교사 생활을 하던 중 방학 때 고향에 갔다가, 방화범이라는 누명을 씌게 되어 도주했지만, 결국 체포되어 감옥 생활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주변 문인들의 탄원으로 석방된 그는 조국을 등지고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바예호는 파리에서 가난한 생활을 보내며 시인으로 활동했다.

또한 그는 반파시스트 운동에 가담하는 등 본격적인 사회 참여를 했는데, 소련을 세 차례 방문하고 공산주의 신문에 글을 기고한 것이 문제가 되어 1930년 추방을 당했다.

쫓겨난 그는 스페인으로 본거지를 옮겼고, 그곳에서 스페인 공산당에 가입하는 등 자신의 사회 참여 행보를 이어 갔다.

그는 맹목적인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레닌, 스탈린 등에게는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2년 뒤인 1932년, 바예호는 다시 파리로 돌아와 정식으로 영주권을 얻었고, 스페인 내전으로 스페인을 방문한 것을 제외한 평생을 파리에서 지냈다.

총 4권의 짧은 시집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방가르드 현대시의 거장으로, 라틴아메리카 아방가르드 문학의 대표 시인이자 페루의 국민적인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자신의 가난하고 불운한 삶에 영향을 받아 전체적으로 작품 분위기가 암울한 편이다.

그러나 단순히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자신만의 신조어를 만들고, 철자와 구문을 의도적으로 바꾸며,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들을 시에 쓰는 등 초현실주의적인 미학을 가지고 있다.

 

<시집 목록>

  • 검은 전령(Los heraldos negros) (1919년)
  • 트릴세(Trilce) (1922년)
  •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España, Aparta de Mí Este Cáliz) (1937년)
  • 인간의 노래(Poemas Humanos) (1939년)

 

* 과거 페루 1만잉티 지폐의 인물이었고, 체 게바라가 사랑한 시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시인의 출신 지역이기도 한 페루의 북부 도시 '트루히요'에 그의 이름을 딴 '세사르 바예호 대학교'가 있다.
페루에서는 나름대로 명문의 대학교이다.
 
페루의 최상위 축구 리그인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축구팀 중 시인의 이름을 딴 'CD 우니베르시다드 세사르 바예호'라는 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