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영국

키츠

높은바위 2015. 3. 17. 08:49

 

 

           나이팅게일에 부쳐서

 

내 가슴은 아프고, 잠을 청하는 마비가

나의 감각을 아프게 한다.

그것은 마치 독약을 삼키고

또는 둔하게 만드는 아편을 찌꺼기까지 마셔 버리고

이윽고 망각의 강으로 가라앉는 듯하다.

네 행운을 시샘해서가 아니라

네 행복에 접하고 나는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날개조차 가볍게 날아 다니는 너의 숲의 정령.

초록색 가지 편 너도밤나무 숲 그 짙은 녹음에서

울림도 아름답게 목청도 좋게 너는 여름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아아! 한 잔의 포도주를 마시고 싶구나.

깊이 파진 땅 속에서 여러 해 냉각되고

꽃내음과 전원의 초록과 댄스와 남국의 노래

그리고 햇빛 가득히 쬔 환락의 맛이 나는 술을.

아아! 그 잔에 따뜻한 남국의 멋진 술 넘치며

진실과 시의 붉은 샘물을 기리는 것이다.

잔 주둥이에까지 구슬진 방울이 떠돌고

마시는 입은 보라색으로 물들게 된다.

그 술을 마셔 사람 몰래 이 세상에서 떠나

너와 함께 어슴푸레한 숲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

 

멀리 사라져서 녹고 말아 잊혀지고 싶다.

나무 잎새 사이에 사는 네가 결코 모르는 것

권태로움과 열병과 번뇌를 잊고 싶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앉아 탄식하기만 하고

중풍든 노인은 몇 개 안 남은 백발을 슬퍼하며

젊은이는 창백하게 유령처럼 야위어 죽는다.

생각하기만 하여도 슬픔과

헤어날 길 없는 절망으로 가득 차서

미인은 반짝이는 눈동자를 간직할 수 없고

새로운 사랑은 내일을 지나서 그 눈동자를 그리워할 수 없다.

 

가거라! 술, 바카스와 그 표범이 끄는

수레를 타지 않고 시의 보이지 않는 날개를 타고

너 있는 곳으로 날아 가리라.

둔한 머리는 머뭇거리게 하고 더디게 했으나

이제는 이미 너와 함께 있다.

밤은 포근하고 여왕인 달도 그 자리에 앉고

별들이 시중을 들고 있나니.

그러나 여기에는 빛이 없다.

어두컴컴한 나무 그늘과 굽은 이끼낀 길에

산들바람 불 때 스미는 하늘에서의 빛이 있을 뿐.

 

발 아래 피어 있는 것이 무슨 꽃인지 나는 모르고

나뭇가지에 어리는 향긋한 냄새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향기 찬 어두움에서 그 냄새를 짐작컨대

5월이 내린 떨기와 풀과 야성의 과일나무 냄새

하얀 아가위에 목장의 들장미

나무 그늘 아래 핀 생명 짧은 오랑캐꽃

그리고 5월 중순의 맏이인

아직은 봉오리진 사향장미에다 여름철 저녁 때

달콤한 꽃꿀이 이슬처럼 맺혀

붕붕거리는 날벌레들이 몰려 온다.

 

어둠 속에서 나는 듣는다. 여러차례에 걸쳐

편안스러운 "죽음"을 나는 거의 사랑하듯 바라고

수많은 명상시에 있는 이름으로

죽음을 부르고 공중에 고요히 숨을 거두려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죽기에 행복스러운 듯하여

이 한밤에 고통 없이 죽고 싶어라.

그 사이에 너는 이렇듯이 황홀하게

영혼을 기울여 노래를 부르누나!

너는 계속해 노래하나, 나 이미 듣지 못하리.

네 숭고한 진혼가에 나는 싸늘한 흙이 되리니.

 

너는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불멸의 새여! 굶주림과 고뇌의 시대가 너를

멸하게 하지는 못하리라.

깊어 가는 이 밤에 듣는 네 노래소리는

옛날에 황제도 또 농부도 들었다.

모름지기 같은 노래는 이국의 밭에서 고향 그리워

눈물 젖은 룻의 가슴을 에이게 했으리라.

같은 노래는 또한 때로 마술의 창문을 매혹 하나니

"쓸쓸한" 신선 나라의 물결 출렁이는 거친 바다에

열려져 있는 그 창문을.

 

쓸쓸하다! 이 말이 종소리같이 울려서

너로부터 나에게로 되울려 부르고 있구나!

잘 가거라! 공상은 소문난 정도만큼 교묘하게

속이지 못하도다. 배반의 요정이여!

잘 가거라! 잘 가거라! 네 슬픈 노래 사라진다.

가까운 목장을 지나, 고요한 시내를 건너

언덕을 올라가 지금은 맞은편 골짜기 사이에

깊이 묻히고 말았나니

그것은 환상이었던가, 아니면 백일몽이었던가?

노래는 사라졌다—나는 깨어 있는가, 자고 있는가?

 

 

 

* 키츠(John Keats : 1795-1821)는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셸리와 더불어 유명하다.

키츠는 런던에서 주막을 경영하는 집에서 태어났으나 일찌기 부모를 여의었고, 의사가 되려 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시작에 열중하게 되었다.

시로서는 야심작 <엔디미온(Endymion)>(1818) 외에 뛰어난 오우드(Ode : 송시(訟詩))를 많이 남겼다.

예술 지상주의자 였던 키츠는 철저한 미의 탐구자였다.

그리스 철인의 말처럼 '만물은 유전한다'는 이 세상에서 단 한가지 '유전'하지 않는 영원한 것은 바로 미인 것이며, 그런 성격을 지닌 미이기에 <Beauty is truth>(Ode on a Grecian Urn에서)인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고 진실된 것으로서의 truth가 오직 하나의 가치인 beauty와 결부되는 곳에 키츠의 미에 대한 신념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1819년 7월에 <Annals of the Fine Arts>에 발표된 것으로서 각 연은 10행으로 되어 있다.

밤에 우는 나이팅게일 소리에 이 세상의 슬픈 현실을 생각하고, 환상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 우수에 찬 노래도 "쓸쓸하다"는 한 마디 말로 문득 현실의 자기자신으로 돌아와, "노래는 사라졌다나는 깨어 있는가, 자고 있는가?"라는 구절로 끝맺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에의 침잠을 동경하면서도 항상 현실과의 대결을 재촉받고 있는 인생이라 한다면, 이 시는 여러가지 문제를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의 사회적인 정세(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와 키츠 자신의 신변문제 등도 포함하여 이 시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