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개구리
야. 나야.
나왔어.
옴개구리야.
나야.
놀라지 않아도 돼.
빛이 이렇게 흐르고 흐트러진 것은
내가 빙글빙글 둘러보고 있기 때문은 아니겠지.
참을 수 없구나.
새파랗구나.
사방에서 향기가 나는구나.
느긋하게 흐르는 구름이구나.
이쪽 저쪽에서 무언가 중얼중얼 울기 시작했구나.
힘껏 날아가버린 겨울
눈부시구나.
파랗구나.
참을 수 없구나.
봄아
나야. 옴개구리야.
* * * * * * * * * * * * * *
* 옴개구리
척삭동물문 / 양서강 / 무미목 / 개구리과 / 옴개구리속
몸길이 4~5.5cm
주름돌기개구리라고도 한다.
등면은 검은색 바탕에 많은 작은 융기가 있으며, 피부에서 독특한 냄새가 난다.
등 중앙에 연한 황색의 세로줄이 있다.
* * * * * * * * * * * * * *
* 쿠사노 신페이(草野心平, 1903년 5월 12일 ~ 1988년 11월 12일 향년 85세)는 일본의 시인이다.
쿠사노 신페이는 1903년(메이지 36년) 후쿠시마현 이시키 군 가미오가와무라(현 이와키시 오가와초)에서 아버지 가오루와 어머니 도메요(장녀 아야코, 장남 민페이, 신페이, 셋째 아들 덴페이, 둘째 딸 쿄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조부모와 함께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성질이 강한 아이였던 것 같다.
신페이는 책을 씹고, 연필을 갉아먹고, 다른 사람들을 씹던 어린 시절을 고향인 아부쿠마 산맥에서 발견되는 큰 화강암처럼 "거칠다"라고 묘사한다.
1919년(다이쇼 8년) 이와키 중학교를 중퇴하고 도쿄로 이주하여 이듬해 게이오기주쿠 대학의 정규부로 전학했다.
1921년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 있는 링난대학(현 쑨원대학)에 유학을 갔다.
이때 그는 16세에 사망한 맏형 민페이의 유품인 공책 3권을 가져왔다.
그곳에서 쓰인 시와 단카에서 영감을 받은 신페이는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의 시는 너무나 많아서 급우들은 그를 "기관총"이라고 불렀다.
유학 시절 신페이는 청춘을 즐기며 시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1923년 여름, 신페이는 고향으로 돌아와 모교인 오가와 초등학교에서 작고한 형과 공동 집필한 시집 '버려진 정원'을 등사하여 인쇄했다.
1925 년에 그는 동인지 "코즈웨이"를 설립했다.
미야자와 켄지(宮澤健岩), 황옌(黃燕) 등은 동인(江人)이었다.
같은 해,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귀국한 신페이는, 신문 기자, 길거리 포장마차의 야키토리 가게, 출판사의 교정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30회 이상 이사를 다녔다.
1928년(쇼와 3년)에 마에바시로 이주하여, 결혼 직후 이주한 그는 다음날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같은 해에 타이포그래피로 인쇄된 첫 시집 『제100류』가 세상에 출판되었다.
신페이는 '개구리', '후지산', '천국', '돌' 등을 주제로 시를 썼는데, 그의 시의 근저에는 '만물과 함께 살아가기'라는 독특한 공생 의식이 있었다.
또한 서예, 그림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여정을 '지그재그 길'이라고 표현하며, 창작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전후 고향 오가와고역 앞에 문을 연 서점 '텐잔', 이자카야 '파이어 휠', 그 후의 바 '학교'에 대한 일화가 부족하지 않다.
1935년에는 창간 587호(2013년 12월 현재)를 돌파하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동인지 잡지 '히스토리'의 창간에 참여했으며, 다카무라 코타로, 나카하라 나카야 등의 활동과 신페이의 폭넓은 친분을 엿볼 수 있다.
코피스의 매력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88년 11월 12일, 그는 1,4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