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노래
개구리는 겨울 동안 땅 밑에 머물다 봄이 되면 땅 위로 올라옵니다.
그 첫째 날의 노래.
너무 눈부셔요.
너무 기뻐요.
벌레는 미끌미끌.
바람은 솔솔.
쾰른 쿡.
아아
쾰른 쿡.
오 개불알풀꽃이 피어있네.
오 커다란 구름이 움직이고 있네.
쾰른 쿡.
쾰른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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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서 개구리가 울어대는 소리가 들리도록 의성어(擬聲語)가 나열된 싯구이다.
작가는 개구리의 울음과 풍경이 하나가 된 것 같다.
시 속의 의성어가 봄의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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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사노 신페이(草野心平, 1903년 5월 12일 ~ 1988년 11월 12일 향년 85세)는 일본의 시인이다.
후쿠시마현 이시키 군 가미오가와무라(현 이와키시 다나카오가와초)에서 태어났다.
게이오기주쿠대학을 중퇴하고, 중국 광둥성 링난대학 미술학과에서 공부했다.
1928년에 그는 '제100기생'을 출판했다.
1935년 이쓰미 요시요시가 창간한 시 잡지 '히스토리'에 참여, 나중에 그는 일본의 괴뢰 정부인 난징에 있는 왕자오밍(왕자명) 정부의 선전부 고문이 되었다.
일부 비평가들은 난징에 세워진 '후지산(1943)'에 대한 제도적 사고의 영향을 지적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연대기"를 다시 출판하고 많은 시인을 양성했으며 개구리를 좋아했다.
그는 5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인 구사노 민페이(1899년 ~ 1916년)와 동생 구사노 텐페이(1910년 ~ 1952년)도 시인이었다.
1919년 이와키 중학교(현 후쿠시마현 이와키 고등학교)를 4학년 때 중퇴하고, 도쿄로 이주해, 1920년 게이오기주쿠대학 정규학부 3학년에 편입했으나, 같은 해 중퇴, 1921년 광둥 링난대학(현 쑨원대학) 고등 교육으로 진학하였다.
1925년, 항일 운동으로 인해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유학 기간 동안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귀국 직전에 일본에서 보내온 미야자와 겐지의 시집 『봄과 수라』를 읽고 큰 자극을 받았다.
1928년(쇼와 3년)에 활판 인쇄로 첫 시집 「제100기」를 출판, 그의 모든 작품은 개구리에 관한 것이었고, 그는 이 생물에 대한 시를 계속 썼다.
1929 -1930년 마에바시에서 거주하며 가미모 신문사에서 근무했다.
1935년에 나카하라 나카야(中原中也) 등과 함께 시 잡지 '연대기'를 창간했다.
1948년 8월, 혼자 도쿄로 이주하여 지바현 우라야스에 정착했다가 나중에 에도가와구로 이주했다.
1949년 8월, 네리마구 시모이시지(下石寺)에 있는 미타케 신사(三竹神社) 사무소로 거처를 옮겨 고향의 가족을 초대했다.
1950년에 "개구리시"로 제1 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3년에 문화공로자 표창을 받았다.
1984년 7월, 이와키시의 명예시민이 되었다.
1987년에 문화 훈장을 받았다.
1988년 11월 12일, 자택에서 병이 나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에 있는 도코로자와시 의료센터에서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하여 이송되었다.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묘비는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오가와초 가미오가와 조케이지 사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