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영국

코울리지

높은바위 2015. 3. 11. 08:06

 

 

         쿠빌라이 칸

 

재너두(上都)에 쿠빌라이 칸은

웅장한 환락의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거기에는 거룩한 강 알프가

사람이 헤아릴 길 없는 깊은 동굴을 통하여

태양이 비치지 않는 바다로 흘러 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5마일의 두 배에 이르는 기름진 땅에는

성벽과 탑이 허리띠처럼 둘러싸여 있었고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에 비쳐 반짝이는 정원도 있었으며,

향긋한 과일을 열매 맺는 나무들이 꽃피어 있었다.

숲은 언덕만큼이나 오래 묵었고

양지바른 녹지가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오호! 삼나무 숲을 가로질러 초록 언덕을

비스듬히 기울어진 크나큰 신비를 지닌 대지의 균열이여!

황량한 곳이로다! 창백한 달빛 아래 요괴한 애인을 그리워하여

우는 여인이 출몰한 장소와도 같이 신성한 마력을 지닌 장소다!

마치 대지가 가쁜 숨을 쉬며 헐떡이듯이

이 틈새로부터 계속 소란스럽게 용솟음치면서

거대한 분수가 시시각각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 빠르게 끊어졌다 이어지는 분출의 한가운데

사방으로 흩어지는 우박과 같이,

또는 도리깨를 맞고 흩어지는 곡식단의 낱알처럼

춤추듯 튀고 있는 바위 속에서 단번에 그리고 끊임없이

거룩한 강으로 물을 계속 흘려 보내고 있었다.

마치 미로(迷路)와 같이 구불구불한 5마일을

이 거룩한 강은 숲과 골짜기를 흘러서

사람이 헤아릴 길 없는 동굴에 이르러

생명 없는 대양으로 소란하게 가라앉았다.

그 떠들썩한 소리 속에서 쿠빌라이 칸은

전쟁을 예언하는 조상의 목소리를 들었다.

 

환락의 궁전 건물의 그림자는

물결 한가운데 떠서 흘렀고,

거기 솟아나는 샘물과 동굴로부터

뒤섞인 가락이 들려 오고 있었다.

그것은 진귀스러운 취향의 기적이었다.

얼음의 동굴이 있는 햇빛 쨍쨍 비치는 환락의 궁전!

 

거문고를 든 아가씨를

나는 일찌기 환상에서 보았다.

그것은 아비시니아의 소녀였었다.

그 소녀는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아보라 산에 관하여 노래하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 그 소녀의

음악과 노래를 되살아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너무 크나큰 환희에 이끌려

드높고 기나긴 음악 소리를 듣고서

공중에 저 궁전을 건설할 것이리니

바로 그 햇빛 쨍쨍 비치는 궁전! 그 얼음 동굴!

음악소리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그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크게 외치리라, 주의하라! 주의하라!

그의 불타듯 번쩍이는 눈, 그의 나부끼는 머리카락

그의 주위를 세 차례 돌고서

성스러운 두려움을 느끼며 눈을 감아라!

그는 꿀이슬을 먹었고

낙원의 밀크를 마시고 자라났느니라.

 

 

 

*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 1772-1834)는 1798년 워즈워드와 더불어 공동시집 <서정시집>을 출판하여, 영국 낭만파의 기수로 떠 올랐다.

당시로서는 과감하다 할정도로 구어체 시어를 사용하였고, 또한 시적표현의 영역을 확대한 작품으로 현대 시인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시 <쿠빌라이 칸>은 코울리지의 꿈의 소산이다.

 

1797년 여름날 코울리지는 엑스무어 변방에 있는 한 농장에 나가 있었다고 한다.

몸이 좋지 않아서 수면제를 먹은 뒤, 사무엘퍼차스 목사가 쓴 여행기를 읽게 되었는데, 쿠빌라이 칸이 지었다는 어느 궁전 이야기에서 그만 잠에 떨어졌다.

쿠빌라이 칸이라면 마르코 폴로 덕분에 유럽에까지 유명해진 황제다.

코울리지의 꿈에 우연히 읽은 그 귀절들이 되살아 나더니, 복잡하게 뒤얽히기 시작하였다.

 

잠자던 시인이 일련의 시각적인 이미지들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모두 말로 형상화된 이미지였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자고 난 시인은, 자신이 틀림없이 3백여 귀절의 시를 썼거나, 누구에게서 들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귀절들이 이상할 만큼 기억할 수 있었고, 또 몇 귀절을 실제 작품 속에 그대로 옮겨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뜻밖의 방문객이 있어서 잠깐 붓을 놓았는데, 그 나머지 부분은 전혀 기억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적잖이 당황하고 억울했던 것은 대략적인 이미지는 희미하게 남아 있으나, 여덟 아홉줄의 산만한 귀절 밖에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강물 표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이미지들이 깡그리 사라졌다.

정말 애석한 것은 그 마지막 귀절들을 최종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코울리지의 술회다.

 

하여튼 이 작품을 두고 스원번은 그렇게 기억해서 써낸 부분이 <영어 운율의 최상의 표현>이라 했으며, 키츠는 <메타포를 써서 그 부분을 분석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무지개를 따올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까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