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미국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높은바위 2023. 4. 19. 06:42

 

사랑은


사랑은 바라는 게 없고
다만 사랑 자체를 채울 뿐.


그러나 너희가 만일 사랑하면서도
또다시 어떤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거든
이것이 너희의 바람이 되게 하라.


서로 녹아서 흘러가며 밤을 향해
노래 부르는 시냇물처럼 되기를.


너무나 깊은 애정의 고통을 알게 되기를.


스스로 사랑을 알게 됨으로써
상처받게 되기를.
그리하여 기꺼이 즐겁게 피 흘리게 되기를.


새벽에는 날개 달린 마음으로 일어나
또 하루 사랑의 날을 보내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되기를.


낮에는 쉬며
사랑의 황홀한 기쁨을 명상할 수 있기를.


저물 무렵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기를.


그리고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입술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며
잠들게 되기를.

 

* * * * * * * * * * * * * * *

 

*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본명 지브란 카릴 지브란 빈 미카일 빈 사드, 1883년 1월 6일 ~ 1931년 4월 10일)은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예술가이며, 시인, 작가이다.

당시 오토만 시리아의 영토였던 근대 레바논의 브샤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미국에서 예술을 공부하고,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1923년작 예언자는 영어 산문체로 쓴 철학적 에세이 연작 중 하나이다.

영감이 넘치는 창작의 초기 사례에 해당하는 이 책은, 냉담한 비평적 평판을 받았지만, 잘 팔렸고, 1960년대 반(反) 문화의 창작물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되었다.

 

지브란은 그의 첫 번째 그림 전시회를 1904년 보스턴에 있는 데이의 스튜디오에서 열었다.

전시회를 여는 동안에, 지브란은 훌륭한 여학교 교장으로 그보다 10년 연상인 메리 엘리자베스 해스켈을 만났다.

해스켈과의 중요한 우정은 지브란의 나머지 생애동안 지속되었다.

해스켈은 지브란의 개인적인 삶과 그의 창작 활동 모두에 영향을 끼쳤다.

지브란은 1908년에 파리에 가서 오귀스트 로댕과 함께 2년 동안 예술을 공부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평생 친구이자 예술적 동료이었던 유세프 호와예크(Youssef Howayek)를 만났다.

그는 이후에 보스턴에서 예술을 공부했다.

 

지브란과 알고 지낸 사람이었던 줄리엣 톰슨은, 지브란의 여러 일화를 기록했다.

그녀는 지브란이 바하이 신앙의 리더로서 대략 1911년에서 1912년 경에 미국을 방문한 압둘-바하를 만났다고 적었다.

 

지브란의 초기 작품은 거의 대부분 아랍어로 기록되었고, 1918년 이후에 출간된 그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영어로 기록되었다.

그의 첫 번째 책은 알프레드 노프 회사에서 1918년에 "미친 사람"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두께가 얇은 그 책은 성서적 운율을 따른 경구와 비유를 담고 있으며, 시와 산문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문체를 지니고 있었다.

지브란은 또한 뉴욕 펜 연맹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민자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레바논계 미국인 작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지브란은 작품에서 기독교를 많이 다루었는데, 특히 영적인 사랑의 주제를 즐겨 다루었다.

그의 시는 영감이 충만한 말로 삶의 화두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고, 그뿐 아니라 형식적인 언어의 사용으로도 주목받았다.

지브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예언자"는, 스물여섯 편의 시적인 산문으로 이루어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