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미국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높은바위 2023. 4. 24. 08:01

 

아남아 고뇌하는 이를 위하여

 

술이야 언젠들 못 마시겠나

취하지 않았다고 못 견딜 것도 없는데

술로 무너지려는 건 무슨 까닭인가

   

미소 뒤에 감추어진 조소를 보았나

가난할 수밖에 없는 분노 때문인가

그러나 설혹 그대가 아무리 부유해져도

하루엔 세 번의 식사만 허용될 뿐이네

   

술인들 안 그런가,

가난한 시인과 마시든

부자이든 야누스 같은 정치인이든

취하긴 마찬가지인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술에조차 계급을 만들지

   

설혹 무엇인가 소유했을지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대가 내 곁으로 올 때는

그와 잡았던 손을 놓아야만 한다네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

모두에게 자유를 주고

모두로부터 자유로울 때

진정 살아 행복할 수 있다네

   

살아 숨 쉬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길가의 들꽃인들 마구 딸 수 있겠는가

   

아름답다 느끼는 건 그대의 마음

보듬고 싶다는 건 그대의 욕심

꺾이는 순간이 뜰 꽃에겐 종말이라네

   

낚시에 걸려드는 고기를 생각해 보았나

한 끼의 식사를 취하려다 매달리는 물고기를

그 또한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

 

* * * * * * * * * * * * * * *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본명 지브란 카릴 지브란 빈 미카일 빈 사드, 1883년 1월 6일 ~ 1931년 4월 10일)은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예술가이며, 시인, 작가이다.

당시 오토만 시리아의 영토였던 근대 레바논의 브샤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미국에서 예술을 공부하고,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1923년작 예언자는 영어 산문체로 쓴 철학적 에세이 연작 중 하나이다.

영감이 넘치는 창작의 초기 사례에 해당하는 이 책은, 냉담한 비평적 평판을 받았지만, 잘 팔렸고, 1960년대 반(反) 문화의 창작물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되었다.

 

지브란은 그의 첫 번째 그림 전시회를 1904년 보스턴에 있는 데이의 스튜디오에서 열었다.

전시회를 여는 동안에, 지브란은 훌륭한 여학교 교장으로 그보다 10년 연상인 메리 엘리자베스 해스켈을 만났다.

해스켈과의 중요한 우정은 지브란의 나머지 생애동안 지속되었다.

해스켈은 지브란의 개인적인 삶과 그의 창작 활동 모두에 영향을 끼쳤다.

지브란은 1908년에 파리에 가서 오귀스트 로댕과 함께 2년 동안 예술을 공부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평생 친구이자 예술적 동료이었던 유세프 호와예크(Youssef Howayek)를 만났다.

그는 이후에 보스턴에서 예술을 공부했다.

 

지브란과 알고 지낸 사람이었던 줄리엣 톰슨은, 지브란의 여러 일화를 기록했다.

그녀는 지브란이 바하이 신앙의 리더로서 대략 1911년에서 1912년 경에 미국을 방문한 압둘-바하를 만났다고 적었다.

 

지브란의 초기 작품은 거의 대부분 아랍어로 기록되었고, 1918년 이후에 출간된 그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영어로 기록되었다.

그의 첫 번째 책은 알프레드 노프 회사에서 1918년에 "미친 사람"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두께가 얇은 그 책은 성서적 운율을 따른 경구와 비유를 담고 있으며, 시와 산문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문체를 지니고 있었다.

지브란은 또한 뉴욕 펜 연맹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민자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레바논계 미국인 작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지브란은 작품에서 기독교를 많이 다루었는데, 특히 영적인 사랑의 주제를 즐겨 다루었다.

그의 시는 영감이 충만한 말로 삶의 화두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고, 그뿐 아니라 형식적인 언어의 사용으로도 주목받았다.

지브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예언자"는, 스물여섯 편의 시적인 산문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지브란은 뉴욕에서 1931년 4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의 원인은 간경변과 폐결핵이었다.

죽기 전에 그는 레바논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그 소원은 1932년에 이루어졌다.

메리 해스켈과 그의 여동생 마리아나가 레바논에 있는 마르 사르키스 수도원을 구입했고, 그곳에 지브란을 묻고, 지브란 박물관을 세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