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쥘 피에르 테오필 고티에(Jules Pierre Théophile Gautier)

높은바위 2023. 2. 8. 07:02

 

  지는 해

 

노트르담 성당
얼마나 아름다운가
빅토르 위고

어느 저녁 뚜르넬 다리를 지나가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노트르담 사원 뒤로 지는 해를 바라본다.
불타는 지평선에는 장엄한 구름 하나가
막 비상하려는 거대한 새처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금빛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 눈을 뜨지 못하게 하는 빛이 있었지.
정면이 돌 레이스로 장식된 탑들,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전나무 숲처럼 솟아있는 첨탑,
이상한 얼굴에 강인한 육체를 지닌
천사들이 올라앉아 있는 박공들이,
밝은 배경 때문에 까맣게 보인다.
주교저택은 엄마 발치에 잠든 아이처럼
성당발치에 그 모습을 보이고, 그 그림자는
신비롭고 어둡게 주위에 늘어져 있다.
저 멀리, 붉은 햇살이 강변의 어느 집 십자창에 불을 붙인다.
공기는 상쾌하다. 물을 아치다리에 부딪치며 소곤거리고,
물결은 오랜 도시의 희미한 그림자를 흔들어대고,
나는 여전히 바라보고 있다.
별 총총 뜬 밤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 * * * * * * * * * * * * * * *

 

Soleil couchant

 

Notre-Dame
Que c'est beau !
Victor HUGO

En passant sur le pont de la Tournelle, un soir,
Je me suis arrêté quelques instants pour voir
Le soleil se coucher derrière Notre-Dame.
Un nuage splendide à l'horizon de flamme,
Tel qu'un oiseau géant qui va prendre l'essor,
D'un bout du ciel à l'autre ouvrait ses ailes d'or,
- Et c'était des clartés à baisser la paupière.
Les tours au front orné de dentelles de pierre,
Le drapeau que le vent fouette, les minarets
Qui s'élèvent pareils aux sapins des forêts,
Les pignons tailladés que surmontent des anges
Aux corps roides et longs, aux figures étranges,
D'un fond clair ressortaient en noir ; l'Archevêché,
Comme au pied de sa mère un jeune enfant couché,
Se dessinait au pied de l'église, dont l'ombre
S'allongeait à l'entour mystérieuse et sombre.
- Plus loin, un rayon rouge allumait les carreaux
D'une maison du quai ; - l'air était doux ; les eaux
Se plaignaient contre l'arche à doux bruit, et la vague
De la vieille cité berçait l'image vague ;
Et moi, je regardais toujours, ne songeant pas
Que la nuit étoilée arrivait à grands pas.

 

* * * * * * * * * * * * * * * *

 

*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 1811-1872)19세기 중·후반 프랑스 문단에서 활약한 시인이자 소설가 겸 문예 평론가다.

프랑스 문학의 감수성이 초기 낭만주의 시대에서 19세기말의 탐미주의와 자연주의로 바뀌던 시절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파리에서 주로 살았고 샤를마뉴 중학에서 제라르 드 네르발을 만나 평생 우정을 맺었다.

원래는 그림을 공부했지만, 얼마 후 자신의 참된 소망은 시를 쓰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낭만주의 운동에 공감하여, 빅토르 위고의 희곡 〈에르나니 Hernani〉가 1830년에 파리에서 처음 공연된 뒤에 일어난 문화적 투쟁에 가담했다.

〈낭만주의의 역사 Histoire du romantisme〉(1874)와 〈당대의 초상화들 Portraits contemporains〉(1874)이라는 책에서 이 시대를 익살스럽게 회상하였는데, 특히 〈당대의 초상화들〉에서는 친구인 오노레드 발자크를 잘 묘사했다. 〈청년 프랑스 Les Jeunes-France〉(1833)에서는 자신을 비롯한 낭만주의자들의 지나친 행동을 풍자했다.

〈괴짜들 Les Grotesques〉(1834~36)은 낭만주의 작가들보다 먼저 개인주의를 제창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에 대한 책이다.

고티에의 최초의 시들은 1830년에 발표되었고, 마법사의 손아귀에 들어간 젊은 화가를 이야기체로 묘사한 장시(長詩) 〈알베르튀스 Albertus〉는 1832년에 발표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낭만주의의 신조에 등을 돌리고 예술을 위한 예술(예술지상주의)의 옹호자가 되었다.

〈알베르튀스〉에 붙인 서문과 소설 〈모팽 양 Mademoiselle de Maupin〉(1835)은 그의 견해를 표현하고 있는데, 전통윤리를 무시하고 아름다운 것만이 최고라고 주장해 문단에 상당한 물의를 일으켰다.

1840년 고티에는 5개월 동안 스페인을 방문했는데, 여행 중에 그 지방과 사람들에게 받은 인상을 시집 〈스페인 España〉(1845)에 실린 그의 가장 훌륭한 시 몇 편과 〈스페인 여행 Voyage en España〉(1845)이라는 산문에 썼다.

자신과 2명의 정부(情婦) 및 3명의 자식, 2명의 누이까지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언론계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스페인 여행이 끝난 뒤 그는 여행이 직장의 끊임없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고마운 탈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1836~55년 〈프레스 La Presse〉지와 〈모니퇴르 위니베르셀 Le Moniteur Universel〉지에 1주일에 1번씩 기고했고, 1851년에는 〈르뷔 드 파리 Revue de Paris〉의 편집장이었으며, 1856년에는 〈아르티스트 L’Artiste〉지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그 밖에도 여러 정기간행물과 신문에 많은 글을 기고했다.

고티에는 자신의 생활형편을 자주 한탄하곤 했는데, 언론활동 때문에 시를 위한 창조적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행, 특히 그리스 여행은 고전시대의 예술형태를 숭배하는 그의 예술론을 더욱 강화해 주었다.

그는 예술이 비개인적이어야 하며 도덕적 교훈을 가르치는 의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예술가는 오로지 형태의 완성을 달성하는 것에만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티에는 시에서 스스로 '치환예술'(transposition art)이라고 부른 기법을 개발하여, 그림이나 다른 예술 작품에서 느낀 정확한 인상을 기록했다.

〈에나멜과 카메오 Émaux et camées〉(1852)라는 책에 발표된 이 시들은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에 속한다.

이 책은 테오도르 드 방빌과 르콩트 드 릴처럼 심미안을 가진 다른 작가들에게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다.

샤를 보들레르는 〈악의 꽃 Les Fleurs du mal〉의 헌사를 고티에에게 바침으로써 경의를 표했다.

고티에의 시적이고 환상적인 상상력은 고대 폼페이나 이집트를 환기시키는 초자연적 이야기인 〈죽은 연인 아바타르 La Mort amoureuse, Avatar〉(1857)라는 소설에서도 돋보인다.

그는 수많은 글을 썼지만 미술 평론과 연극 비평만이 그의 평판을 지켜주었는데, 이것의 일부는 〈유럽의 미술 Les Beaux-Arts en Europe〉(1855)과 6권으로 된 〈프랑스 연극 25년간의 역사 Histoire de l’art dramatique en France depuis vingt-cinq ans〉(1858~59)에 재수록되었다.

발레 비평가로서는 지금도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그는 희곡에도 손을 댔고, 베르누아 드 생조르주와 함께 인기 있는 발레 〈지젤 Giselle〉도 썼다.

동시대를 살았고 그에 못지않게 유명한 문인 플로베르, 생트 뵈브, 공쿠르 형제, 방빌, 보들레르 등의 존경을 받았다.

만년에 마틸드 공작부인의 친구가 되었는데, 공작부인은 그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서관 사서라는 한가로운 직책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