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이브 장 본느프와(Yves Jean Bonnefoy)

높은바위 2023. 9. 30. 07:28

 

또 하나의 소리

 

모든 것이 멈출 때
머리칼을 흔들거나 <불사조>의 재를 뿌리면서

그대는 무슨 몸짓을 시도하려 하는가,
그리하여 존재의 자정이 책상을 비치는 것은 언제인가?
 
모든 것이 침묵을 지킬 때
그대의 검은 입술 위에서 그대는 어떤 기호를,
어떤 가난한 언어를 지키려고 하는가,
아궁이에 불이 꺼져버릴 때 마지막 불씨를 지키려 하는가?
 
나는 그대 속에서 살아가리라,
그리고 나는 그대 속에서 모든 빛을 꺼내리라,
모든 화육化肉, 모든 암초, 모든 법을.
 
그리하여 내가 그대를 끌어올린 허무 속에다
나는 번갯불의 길을 열리라,
아니면 아직껏 소리친 적이 없는 가장 커다란 외침을.

 
* * * * * * * * * * * * * *
 
이브 장 본느프와(Yves Jean Bonnefoy, 1923년 6월 24일 투르 ~ 2016년 7월 1일 파리)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미술사가이다.
1923년 Tour에서 6월 24일 출생함.

1929년 초등학교 입학, 방학 때는 중부 산악지대인 L0t 지방에 있는 조부모의 과수원에서 지내게 됨.
은퇴한 교사인 외조부는 자상한 성품과 많은 장서로 본느프와의 세계관과 상상력에 깊은 영향을 준다.
본느프와는 작은 마을인 투르보다는 외조부의 산악지방을 좋아했으며, 그의 시적 상상력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사막과 더불어 황야의 이미지, 나무의 이미지들은 이곳에서 얻어진 것이다.
또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세계는 그가 방학시간을 보냈던 산악지대에 대한 향수를 드러낸다.
또한 그곳은 시인이 도달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한다.
 
1934년 데카르트 중등학교에 입학. 기차로 통학함.
1936년 기관차 조립공이었던 부친 사망. 모친이 투르 근교 시골 마을의 정식교사가 됨.
1941년 수학과 철학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 통과.
1942년 Poitiers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함. 초현실주의 시 특히 엘뤼아르를 탐독함.
1943년 파리로 상경함. 시에 대한 열렬한 관심으로 수학전공을 포기하고 철학과 시로 방향을 바꿈. 헤겔과 하이데거의 철학, 폴 발레리와 장 주브의 시로부터 영향을 받고, 보들레르와 랭보를 문학적 등대로 삼음. 초현실파 화가인 Brauner, Ubac, Belmer와 교류함.
1945년 초현실주의 운동의 정통성을 자임하는 잡지 <혁명. 밤 La Revolution La 'Nuit>을 친우들과 어울려 창간함.
이 시기에 파울 첼란과 우정을 맺고 바타이유 , 단테, 주브 등을 섭렵함.
특히 체스토프의 <열쇠의 권력>을 읽고 초현실주의와 결별함.
뉴욕에서 귀국한 브르통과도 만났으나 소원함.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시인들과 긴밀히 교류하였으나 자동기술법에 의해 자신이 사물 밖에 고립된다는 것을 알고, 초현실주의가 점점 그가 좋아하지 않는 형이상학 쪽을 기울어지자 과감하게 초현실주의를 떠남.
 
1947년 첫 번째 결혼. 파리 아카데미에 잠시 근무.
소르본느 대학에서 바슐라르의 과학철학, 장 발 (Jean Whal) 교수의 지도하에 실존주의 와 독일 철학을 공부함.
1947-52년 첫 시집 <두브의 운동과 부동에 관하여> 준비함. 이탈리아를 처음으로 여행한 이후 14-15세기 문예부흥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바로크, 비잔티움과 로마 시대 예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 조형 예술의 형태 묘사에 관해 흥미를 갖고, 이미지의 통일감과 시 언어와의 관계에 주목하게 됨.
1953년 친분이 있는 서적상 아느리엔느 모니에의 주선으로 메르퀴르 드 프랑스 출판사에서 <두브>를 출간함. 이후 그의 모든 저서는 이 출판사에서 간행된다. 이곳에서 드디어 피에르 장 주브와 상면하게 되고, 시에 대한 열정으로 앙드레 뒤 부세, 필립 자코테, 쟈크 뒤펭 등 동시대 시인들과 교류하게 됨.
1954년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을 시작함. 프랑스 고딕 시대 벽화 연구에 몰두함.
1955년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국립 과학 연구소에 연구 조교로 들어감.
1958년 시집 <사막을 지배하는 어제>를 간행, 이듬해 이 시집으로 <누벨 바그 상>을 수상함.
1959년 첫 시론집 <있음 직하지 않은 것>(L'improbable) 출간함. 시뿐만 아니라 예술 비평, 시 이론, 번역에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계기를 마련함. 비평가 장 스타로벵스키, 피콩과 시인 루이-르네 데 포레와 친교함.
1961년 <랭보론> 출간함.
1963년 재혼. 바스 -알프 Basse-Alpes지방에 애착을 갖고 10년간 거주함.
1965년 시집 <글이 써져 있는 돌>(Pierre ecrite) 간행.
1967년 시론집 <멘토바에서 꾼 꿈>(Un Reve a Mantoue) 출간함. 비평가 가에탕 피콩과 시인 뒤 부쉐 등과 함께 시 전문잡지 <에페메르> (Éphémere) 창간을 주도하여 1972년까지 간행함.
1968년 아시아 방문 여행.
1970년 이후 제네바 대학, 파리-벵센느 대학, 니스 대학에서 객원 교수로 지냄.
1971년 전년도 발간한 초기 바로크 연구서 <1630년의 로마>로 <비평가 협회상> 수상함.
1972년 외동딸 마틸드 출생. 고향에서 모친 사망.
1975년 시집 <한계의 유혹 속에서> (Dans le leurre du seuil> 출간함.
1977년 시론집 <붉은 구름> (Le Nuage rouge> 출간함.
1979-81년 프로방스 대학교 부교수 역임함.
1981년 프랑스 석학의 전당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시론 석좌 교수로 선임되어 시론을 강의함. 이 석좌 교수 직은 오래전 폴 발레리가 이 학교에서 맡았던 직명이었다. <<현존과 이미지>>라는 제목으로 취임 강연함.
1987년 시집 <빛이 없던 것> (Ce qui fut sans lumiere) 출간함.
1988년 시론집 <언어의 진실> (La Vérite de parole) 출간함.
1991년 시집 <눈의 처음과 끝>(Début et fin de la neige) 출간함. 수년에 걸친 노작의 결과인 <알베르토 자코메티> (Alberto Jacometti) 작가론 출간함.
1993년 콜레주 드 프랑스 은퇴 후 왕성한 문필 활동을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