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란히 누워 있다. 적이든 아군이든
갈빗대 사이엔 풀이 돋고, 눈구멍으로는
빛나는 양귀비, 얼굴 찌푸린 녹슨 무기들.
이제 그들은 평화를 얻었다. 어디에 경계선이 그어질지
더 이상 줄다리기 하지 않는다., 옳은 쪽이 이기든 그른 쪽이 이기든.
각자의 경계를 두고 싸우던 시절의 이빨을 넘나들며
죽음의 비밀이 배회한다.
한국의 흙에서 나온 인골들이여, 협상 테이블 너머
그림자처럼 숨죽인 그대들을 본다,
계획된 행위 끝에 그대 형제인 죽임이 퇴적물로 쌓이는 그곳.
죽음은 말이 없고, 그저 정치가의 싸늘한 의식에 담긴
희미한 찌푸림일 뿐. 그대의 평결은
날인 찍히고 서명되어- 서류철로 던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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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의 국민 시인인 울라브 하우게(Olav H. Hauge 1908. 8.18~ 1994. 5. 25)는 70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5년 주기로 조현병을 앓아서 정신병원을 수 차례 드나들어야 했다.
그의 고향 울빅(Ulvik)에 있는 조그마한 과수원에서 평생 사과농사를 짓던 그의 삶은 고독하고 단조로웠지만, 구도자적인 그의 詩들은 눈이 부시도록 다채롭다.
득도자와 달리 구도자의 영혼은 끝없이 목마르고 허기지다.
득도자의 자리는 오히려 담담히 무채색일지 모른다. 그러나 애달픈 구도자의 여정은 무지갯빛으로 빛난다.
그의 시는 아름다울지라도 그의 삶은 측은함이 절로 든다.
어느 날, 그 빛은 스스로 그에게로 걸어왔다.
화가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였던 보딜 카펠렌(Bodil Cappelen 1930. 4. 26~)과의 만남이다.
보딜은 다채로운 색실로 카펫을 짜는 민속예술인 태피스트리(Tapestry) 디자이너였다.
평소 하우게의 시에 심취하였던 그녀는 1970년 하우게와 서신으로 교제하기 시작했고, 1975년엔 하우게가 있는 울빅으로 이사 와서, 1978년에 스물두 살의 연상인 하우게와 결혼하여 그가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하우게의 성격으로 보면 그렇게 로맨틱할 것 같지는 않지만, 보딜을 만난 후로는 달라졌다.
5년 주기로 찾아오던 조현병도 사라졌다.
보딜을 위한 "카펫(Carpet)"이라는 시를 보면 그의 로맨틱한 감수성이 놀라울 정도이다.
보딜은 1970년부터 1975년까지 하우게와 주고받았던 서신(Brev 1970-1975)을 책으로 출간했다.
하우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로운 내용을 만나게 될 것이다.
카펫 / 울라브 하우게
보딜, 나를 위해 카펫을 하나 짜주오/ 꿈과 소망으로 짜주오/ 바람으로 짜주오/ 그럼 난, 베두인처럼,/ 기도할 때 그것을 펼치고/ 잠잘 때 나를 감쌀 거요./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부르는 소리/ “밥상 다 차려놨어요!”// 추위를 막는 망토로,/ 나의 보트를 위한 돛으로/ 그것을 짜주오// 어느 날 난 그 카펫에 앉아/ 항해하게 될 거요/ 또 다른 세계 속으로//
* 보딜(보딜 카펠렌Bodil Cappelen)은 스물두 살 연하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