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독일

알프레드 몸버트(Alfred Mombert)

높은바위 2023. 8. 17. 06:56

 

겨울밤

 

낙일(落日)은 굳은 눈을 피로 물들이고 운다.
고요히 고요히 네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산타 마리아....



「내 입은 상처를 입어 아프다
그 사람에게 입맞췄기에.
내 몸은 병들어 차다
그 사람을 따뜻이 녹였기에.
내 마음은 헛되이 죽는다
그 사람을 사랑했기에...」
고요히 네가 부르는 노래를
꿈속에서 듣는다, 산타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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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몸버트(Alfred Mombert, 1872년 2월 6일 ~ 1942년 4월 8일)는 독일의 시인이다.

몸버트는 유태계 독일인 상인 에두아르트 몸베르트와 그의 아내 헬렌 곰베르츠의 아들이었다.

경제학자 폴 몸버트는 그의 사촌이었다.

1890년, 그는 고향인 카를스루에에 있는 인본주의 그로세르조글리첸 체육관에서 아비투르를 통과한 후 자원 봉사자로 군 복무를 했다.

 

1891년부터 1895년까지 그는 하이델베르크, 라이프치히,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896년 그는 하이델베르크에서 첫 번째 주 시험에 합격했으며 1년 후 논문 없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그는 법률 연수생 및 조수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1899년에 두 번째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906년부터 1940년까지 그는 하이델베르크에서 변호사로 일했으며, 1909년까지 뮌헨에서 몇 년(1911-1940), 1906년까지 살았다.

2년 후, 그는 직업을 그만두고 문학 작품에만 전념했다.

 

그의 문학적 추구와 함께 몸버트는 지리학, 동양학과 같은 과목을 공부했으며, 특히 이탈리아와 스위스로 많은 여행을 다녔다.

몸버트는 또한 이집트, 알제리, 그리스,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모로코, 모나코,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시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튀니지 등 여러 나라를 방문했고, 그동안 그는 고대 북유럽, 동양, 인도 신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작품에 대한 연구와 1894년 4월의 선구적이고 삶을 정의하는 경험과 함께 그가 The Glowing One 이후의 후속 시를 통해 발전시킨 일종의 신화적-우주론적 사적 종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몸버트는 미혼의 작가로 지내며 매우 외딴 고독한 삶을 살았으며 종종 혼자 여행했다.

1939년부터 죽을 때까지 그는 미망인 여동생 엘라 구트만과 함께 살았다.

몸버트의 편지들 중에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Charlotte Kaufmann (1880-1960)으로 확인된 Vasanta라는 별칭으로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피아니스트와 연애를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몸버트는 또한 게르트루드 풀(Gertrud Full)이라는 이름의 가수와 정기적으로 서신을 주고받았는데, 그의 레퍼토리에는 그의 시 중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몸버트는 1942년 4월 8일, 스위스 빈터투어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