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그외 나라

아르헨티나,칠레,미국:블라디미로 아리엘 도르프만(Vladimiro Ariel Dorfman)

높은바위 2023. 10. 6. 07:39

 

동시통역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국제회의장에서
유리 칸막이 방에 앉아
딸까에서 온 농부가 고문에 관해 하는 말을
통역하는 통역사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자들이 그를 고문대 위에 눕혔다는 말을 영어로 반복하고
가장 세련되고 섬세한 불어로
전기고문이 지속적인 전이성 후유증을 남긴다고 진술하고
개새끼들한테 강간당했다는 말에 꼭 들어맞는 낱말을 찾아내는
빠우 다다라 나는 그 살인자 놈들에게 욕을 해댔소
당신 등뒤엔 벽이 있고
사격조 조장이 "발사"라고 외치기 시작할 때
그때의 기분을 정확히 담아내는 어구를
아무 감정 없이 찾아내고
-여기서 운율이 느껴진다면 부디 용서하시라-
문장에서 멜로드라마를 덜어내려 애쓰면서
그것이 진짜 하려는 얘기의
어둡고 끈끈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핵심과 느낌을 전달하려 노력하는
놈들은 내 아들을 옆방에서 고문하고 있었소
놈들이 우리 동지를 의식불명인 채로 다시 끌고 왔어요
놈들이 우리 여성동지의 몸 속에 쥐를 집어넣었단 말이오 정말이오
통역사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사전 그들의 메모 그들의
교양 일이 끝나면 제네바 뉴욕 헤이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과,
일개 중개인, 다리랄 수조차 없는,
전문가란 이유로
두둑이 보수 받고 동시통역이나 해주는 우리들
그러나 놀랍게도 그런 우리들에도 불구하고
나의 번역과 말투의 강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전달된다
그 비명의 한 자락
피의 덤불
견딜 수 없는 눈물 몇 방울
인류는 무엇인가 듣고
마음이 움직인다.

 

* * * * * * * * * * * * * *

 

* 블라디미로 아리엘 도르프만 (Vladimiro Ariel Dorfman, 1942년 5월 6일 ~ 현재 81세)은 아르헨티나계 칠레계 미국인으로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 학자, 인권 운동가이다. 

1985년부터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있는 듀크 대학교에서 문학 및 라틴 아메리카 연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도르프만은 1942년 5월 6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데사(당시 러시아 제국)의 부유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돌프 도르프만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직후, 그들은 미국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그는 정치적 긴장으로 인해 가족이 강제로 이주할 때까지 뉴욕에서 어린 시절의 첫 5년을 보냈다. 

그의 가족은 1966년 결국 칠레에 정착했다.

그는 칠레 대학교에 다녔고, 나중에 교수로 일했으며, 1967년 앙헬리카 말리나리치와 결혼하여, 1968년 칠레 시민이 되었다.

1968년부터 1969년까지 그는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에 다녔고 칠레로 돌아왔다.

1990년 칠레에서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후, 그와 그의 아내 앙헬리카는 산티아고와 미국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칠레 사회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군부독재에 저항한 경험, 망명과 다문화 체험을 명쾌하고 날카로운 풍자와 깊이 있는 통찰로 녹여낸 작품들을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미국패권주의와 자본주의 주류문화를 비판하며, 생태주의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활동을 줄기차게 해오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희곡 『죽음과 소녀』『독자』,

장편소설 『과부들』 『콘피덴츠』 『체 게바라의 빙산』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

소설집 『우리 집에 불났어』,

시집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문화비평집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제국의 낡은 옷』,

평론집 『미래를 향해 쓰는 작가들』 『공포 몰아내기』,

회고록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 『아메리카의 망명자』,

정치에세이 『국토안보부가 내 연설문을 삼켰습니다』(근간) 등 수많은 저서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