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잔인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 속으로 참는 것이 더 고상한가,
아니면 고난의 물결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워 이를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 것은 잠자는 것 오직 그뿐.
만일 잠자는 것으로 육체가 상속받은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피치 못할 괴로움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심으로 바라는 바 극치로다.
죽음은 잠드는 것!
잠들면 꿈을 꾸겠지? 아, 그게 곤란해.
죽음이란 잠으로 해서 육체의 굴레를 벗어난다면
어떤 꿈들이 찾아올 것인지 그게 문제지.
이것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고, 또한 그것 때문에
이 무참한 인생은 끝까지 살아 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과
권력자의 횡포와 세도가의 멸시와
변함 없는 사랑의 쓰라림과 끝없는 소송 상태,
관리들의 오만함과 참을성 있는 유력자가
천한 자로부터 받는 모욕을 한 자루의 단검으로
모두 해방시킬수 있다면 그 누가 참겠는가.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지루한 인생고에 신음하며 진땀 빼려 하겠는가.
사후(死後)의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면
나그네 한번 가서 돌아온 일 없는
미지(未知)의 나라가 의지를 흐르게 하고
그 미지의 나라로 날아가기보다는
오히려 겪어야 할 저 환란을 참게 하지 않는다면—
하여 미혹(迷惑)은 늘 우리를 겁장이로 만들고
그래서 선명스러운 우리 본래의 결단은
사색의 창백한 우울증으로 해서 병들어 버리고
하늘이라도 찌를 듯 웅대했던 대망(大望)도
잡념에 사로잡혀 가던 길이 어긋나고
행동이란 이름을 잃고 말게 되는 것이다 .
<햄릿>에서
*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 1564-1616)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햄릿>에서 너무도 유명한 햄릿의 독백.
괴테 · 슐레겔 · 코울리지 · 투르게네프 등 많은 사람들이 햄릿의 성격에 대해서 평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많은 점에서 자기 자신과 유사한 햄릿이라는 인물을 창조함에 있어서, 그를 자기 자신과 완전히 분리시켜 천부적인 창조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한 결과, 그 불명확성으로 인해 영원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햄릿이라는 형상을 창조해냈던 것이다.
이 형상(形象)을 창조해 낸 영혼은 북부인(北部人)의 영혼이며, 반성과 분석의 영혼이며, 고통스럽고 음울하며, 조화와 밝은 색채를 상실한 영혼이며 우아하고 때로는 섬세하기조차한 외형(外形)을 한 결코 원만하지 않은 영혼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혼은 깊고, 강렬하고 다양하며, 독립적이고도 지도자적인 영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