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영국

바이런

높은바위 2015. 3. 13. 07:04

 

 

   그러면 내가 맥없이 있을 때

 

그러면 내가 맥없이 있을 때 그대는 울겠다는 것이냐?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 말을 다시 한번 들려다오.

그러나 말하기가 슬프면 말하지 말아라.

나는 결코 네 마음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은 슬프고 희망은 사라졌다.

가슴에 흐르는 피는 싸느랗게 바뀌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버린다면 너만이

내가 잠든 곳에 서서 한숨을 쉬어 주리라.

 

그러나 나는 괴로움의 구름사이를 누비며

한 줄기 평안의 빛이 빛나듯이 느껴진다.

그러면 슬픔은 잠시 사라지게 되나니

그대 마음이 날 위해 탄식해 줌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여, 네 눈물에 축복이 있으라.

울 수조차 없는 사람을 위해 그것은 부어진다.

좀처럼 눈물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런 눈물 방울이 가슴에 한껏 스미게 된다.

 

사랑하는 이여, 네 마음도 지난 날에 따뜻했고

느낌 또한 네 마음처럼 부드러웠었다.

하지만 아름다움조차도 나를 진정케 못하고

한숨짓기 위해서만 창조된 가련한 사나이다.

 

그런데도 내가 맥없이 있을 때 너는 눈물을 흘려주겠다는 것이냐?

사랑하는 이여 그 말을 다시 한번 들려다오.

하지만 말하기가 슬프면 말하지 말아라.

나는 결코 네 마음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

 

 

 

* 셀리, 키츠와 더불어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 1788-1824)은 격렬한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나면서부터 절름발이였으나 우아한 얼굴 모습과 뛰어난 시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열렬한 사랑을 하였다.

남부 유럽과 근동을 여행하여, 장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를 써서 혁신적인 정견을 발표하기도 했고, 질투와 일신상의 문제도 생기게 되자, 런던 사교계는 바이런에 대해 차갑게 대했다.

결국 그는 1816년에 영국을 떠나게 되었고, 그 뒤로 두번 다시 고국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전전하면서 창작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걸작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