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는 뜻이 비슷한 것들이 많아 잘못 쓰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제거하다 / 소거하다 / 소멸하다 / 삭제하다'는 의미가 어떻게 다른가?
알 듯 모를 듯 쉽사리 대답하기 어렵다.
한자어는 되도록이면 안 쓰는 것이 좋지만, 꼭 써야 하는 경우라면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쓰도록 하자.
1) 일체(一切) / 일절(一切) : 나에게 일체 간섭하지 마라.
* '일체'는 '모든 것, '모두 다'를 뜻하며, '일체의 책임을 지다', '지나간 일은 일체 털어 버리자' 등에서 사용된다.
'일절'은 '아주', '전혀', '절대로'의 뜻으로, '그는 일절 연락을 끊었다', '출입을 일절 금한다' 등에서처럼 부정적인 내용과 어울려 쓰인다.
한자는 같으면서도 '일절'과 '일체'로 차이가 나는 것은 '切'이 '끊을 절', '무드 체'의 두 가지 뜻으로 달리 읽히기 때문이다.
위의 예는 틀린 예로 '나에게 일절 간섭하지 마라.'로 써야 한다.
2) 부문(部門) / 부분(部分) :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반지의 제왕'이 11개 부분을 석권했다.
* '문화, 예술, 학술 분야 등에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분류해 놓은 것'은 '부분'이 아니라 '부문'이다.
'부분'은 '행사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하다'와 같은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체를 이루는 작은 범위 또는 전체를 몇 개로 나눈 것의 하나'를 뜻한다.
3) 운영(運營) / 운용(運用) : 새 정부의 경제정책 운영이 일관성이 없어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 '운영'은 '조직이나 기구, 사업체 등을 경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직 운영에 대한 책임을 지다'와 같은 문장에 쓰인다.
'운용'은 무엇을 움직이게 하거나 부리는 것이다.
정책, 제도, 법, 인력 등에는 '운용'이 어울린다.
4) 시험(試驗) / 실험(實驗) : 평화헌법을 보유한 일본이 군대 및 전쟁에 대한 태도를 바꾼 데는 1998년 북한의 탄도미사일 실험발사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 '시험'과 '실험'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시험'은 주로 행위를 뜻하는 명사 앞에 붙어 시험 삼아 무엇을 해 볼 때 쓰이고, '실험'은 행위를 뜻하지 않는 명사 앞에 붙어 과학 부분에서 어떤 현상을 조사, 관찰하거나 새로운 방법, 형식을 사용해 볼 때 쓰인다.
예) 시험운전, 시험발사, 시험조업, 시험비행, 시험결혼, 시험매매 등등.
실험과학, 실험동물, 실험소설, 실험학교, 발사실험, 화학실험 등등.
5) 결제(決濟) / 결재(決裁) : 그 회사는 어음을 결재하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 '결재'는 '결정할 권한이 있는 상관이 부하가 제출한 안건을 검토해 허가하거나 승인하는 것'이고, '결제'는 '증권 또는 대금을 주고받아 매매 당사자 사이의 거래 관계를 끝맺는 일'이다.
6) 참석(參席) / 참가(參加) / 참여(慘與) : 이번 행사에는 세계 20여 명의 예술가가 참석했다.
* '참석'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모임이나 회의에 함께 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행사, 대회 등 규모가 큰 것에는 '참가'가 어울린다.
'참여'는 '현실 참여, '경영 참여' 등에서처럼 '어떤 일에 끼어들어 관계하는 것'으로, 추상적인 형태의 활동까지 포함한다.
7) 차선(車線) / 차로(車路) : 이 구간에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전용차선제가 실시된다.
* '차선'은 '자동차 도로에 그어 놓은 선'으로 '차선을 지키다', '차선을 침범하다' 등으로 쓰인다.
'차로'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좌측 차로로 무리하게 끼어들다'처럼 사용된다.
'전용차선제'가 아니라 '전용차로제'가 맞다.
8) 주인공(主人公) / 장본인(張本人) : 최고 인기 여배우의 마음을 사로잡은 행운의 장본인이 누구인지 세인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 주로 '주인공'은 긍정적인 곳에 잘 어울리고, '장본인'은 부정적인 곳에 잘 어울린다.
9) 당사자(當事者) / 주역(主役) : 이스라엘 페레스 오무 장관은 오슬로 합의를 이끌어 낸 당사자다.
* '당사자'는 '어떤 일이나 사건에 직접 관계가 있거나 관계한 사람'이란 뜻이며, '당사자 이외 출입금지', '피해 당사자' 등과 같이 쓰인다.
'주역'은 '주된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건 해결의 주역들', '그는 팀이 우승하는 데 주역이 되었다' 등처럼 사용된다.
10) 보존(保存) / 보전(補塡) : 노사 양측은 임금 보존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 '보존'은 '잘 보호하고 간수하여 남김'을 뜻하며, '유물 보존', '영토 보존', '종족 보존', '공문서 보존' 등에 쓰인다.
'보전'은 '부족한 부분을 보태어 채운다'는 뜻으로, '적자 보전' 등의 예로 사용된다.
'임금 보존'은 '임금 보전'이라고 해야 한다.
이와 한자가 다른 '보전(保全)'도 있다.
'온전하게 보호하여 유지한다'는 뜻으로, '생태계 보전', '환경 보전' 등으로 쓰인다.
11) 배상(賠償) / 보상(補償) : 다른 건물이 들어서 조망권, 일조건을 침해당하면 이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 '배상'은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물어 주는 것'이며, '보상'은 '적법 행위로 인한 손해를 물어 주는 거'이다.
다른 건물이 들어서는 것 자체는 불법행위가 아니므로 조망권, 일조권 침해는 '보상'이 맞는 말이다.
12) 반증(反證) / 방증(傍證) : 절제되지 않은 언어로 상대방의 감정이나 건드리려 하는 건 자신의 논리가 빈약하다는 반증이다.
* '반증'은 '반대되는 증거'이며, '방증'은 '주변 상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예문에서는 '간접적인 증거'라는 뜻이므로 '반증'을 '방증'으로 고쳐야 한다.
'방증'의 경우 '증거'로 고쳐도 뜻이 통한다.
13) 개발(開發) / 계발(啓發) : 과학 영재의 창의성 개발을 위한 풍요화 교육과정을 계발하고 활용해야 한다.
* '개발'은 '토지나 천연자원 등을 개척해 유용하게 만들거나 산업, 경제 등을 발전하게 하는 것'으로 주로 물질적인 것이다.
'인력 개발' 등 사람의 일반적인 능력도 대상이 된다.
'계발'은 '인간 내부에 잠재해 있는 능력이나 자질, 재능 등을 일깨워 주거나 이끌어 주는 것'으로, 주로 개인적인 능력이 대상이다.
14) 곤욕(困辱) / 곤혹(困惑) : 신용불량자들의 '배 째라' 식 행태가 카드사 채권추심팀을 곤욕스럽게 만들고 있다.
* '곤욕'은 '심한 모욕'을 뜻하며, '곤욕을 치르다', '곤욕을 겪다' 등의 예로 쓰인다.
'곤혹'은 '곤란한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으로, '곤혹스럽다', '예기치 못한 질문에 곤혹을 느꼈다' 등처럼 사용된다.
15) 운명(殞命) / 유명(幽明) : 한 상궁은 주위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역모의 누명을 쓰고 운명을 달리했다.
* '운명'에는 두 가지 한자가 있는데,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뜻하는 '운명(運命)'과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을 뜻하는 '운명(殞命)'이다.
이 중 '운명(殞命)'은 '80세를 일기로 운명하셨다', '운명을 지켜보지 못했다' 등과 같이 쓰인다.
'유명(幽明)'은 '어둠과 밝음, 즉 저승과 이승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유명을 달리했다'라고 하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갔다는 뜻이다.
따라서 '죽다'의 의미로는 '운명(殞命)하다'나 '유명(幽明)을 달리하다' 둘 중 하나를 써야 한다.
16) 지향(志向) / 지양(止揚) : 남북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특수 관계다.
* '지향'은 '어떤 목표로 뜻이 쏠리어 향하는 것'을 말하며, '지양'은 더 높은 단계로 오르기 위해 어떤 것을 하지 않음'을 뜻한다.
17) 재연(再演) / 재현(再現) : 현장 검증에 나선 범인은 태연히 범행을 재현했다.
* '재현하다'는 '100여 년 전의 농촌을 재현한 마을에 관광객이 줄을 이었다'에서처럼 '다시 나타나다', '다시 나타내다'는 뜻이며, '재연하다'는 '(연극, 영화 등을) 다시 상연하다', '(한 번 했던 일을) 되풀이하다'는 의미다.
범행은 '재연'이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