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독일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

높은바위 2023. 7. 26. 06:12

 

올페 1)의 죽음

 

어찌 당신은 나를 뒤에 남겼습니까, 사랑하는 이여 -

명부에 부딪히고,

황량한 로도페2)

숲에 끌어가고,

두 가지 빛깔의 딸기,

붉은빛으로 이글거리는 과일 -

잎이 나면서,

수금(手琴)을 켜네

그 현에 부딪히는 엄지손가락!

 

이미 북풍 속에서의 3년!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달콤한 일,

그렇게 먼 곳,

맑은 목소리가 들린다.

 

덧없는, 그러나 깊은

입맞춤이 느껴진다 - .

그대 결국 그림자에서 방황함이여!

 

1) 그리스 신화, 아폴로아 킬리오프 사이에 난 아들로 시인이며 음악가.

    그가 타는 하프가 하도 오묘하여 금수초목까지 매혹당했다고 한다.

    아내 오이뤼디케가 죽자 황천에 내려와 음악으로 플루토를 감동시켜

    <뒤돌아보지 않고 가겠다>고 약속하고 아내를 데려가기로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그 약속을 이루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다.

2)  지금의 불가리아 서남쪽에 있는 산.

 

어찌 당신은 나를 뒤에 남겼습니까 - ,

바다의 요정이 물결치고,

아름다운 바위가 눈짓하며,

꾸꾸 울리는 소리, <황량한 숲에는

목양신과 협곡, 그리고 당신.

가수와 청동빛의

아취, 제비들 나는 하늘 - ,

울리는 소리 -

잊으라! ->

 

- 겁을 주라 -!

  

그리고 한 사람이 기이하게 바라본다.

몸집이 크고, 얼룩진

살갗의 색깔이 얼룩덜룩한 사람 (<노란 양귀비>)

겸손하게, 아주 순진한 모습으로

거리낌 없이 유혹하고 있네 - (사랑의 잔 속에 들어

있는 자줏빛 -!) 헛되도다.

 

겁을 주라 -!

 

아니다. 그대 결코 훼방할 수 없네.

욜리, 3) 드리오페, 4) 프로크네 5)에게로

그대는 넘어가지 못하리,

그 모습들은 애틀랜타와 섞여 있지 않고 라이스 6)의 

집에서  나는 혹시 오이뤼디케7)를 더듬을지도 몰라 -

 

그래도 겁을 주랴!

 

3) , 4), 5)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

6) 아름답기로 이름났던 그리스의 창녀.

7)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페의 아내.

올페는 음악의 힘으로 지하에서 아내를 구출하지만 풀루토와의 약속을 어기고,

아내가 따라오는가 확인하기 위해 뒤돌아보았기 때문에,

그녀는 다시 지하계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그 이마는

  더 이상 소리를 쫓지 않는다.

  가수에겐

  이끼가 덮이면서

  나뭇가지들은 잎을 잠재우고

  갈퀴로는 이삭을 갈고 -

  벌거벗은 하우네여 - .

 

  이젠 아무 방어 없이 암캐에 내던져진,

  그 쓸쓸한 죽음 -

 

  이제 속눈썹은 벌써 축축해졌고,

  턱주가리에는 피가 맺혔다 -

 

  현금(絃琴)은 지금

  바다를 떠내려가네 -

 

  해안이 소리를 울리고 있다 - .

 

* * * * * * * * * * * * * * *

 

*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 1886년 5월 2일 ~ 1956년 6월 7일)은 독일의 시인, 수필가, 의사이다.

고트프리트 벤은 1886년 5월 2일 베스트프리그니츠(Westprignitz) 지방의 만스펠트(Mansfeld)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구스타프 벤(Gustav Benn)은 당시 29세의 프로테스탄트교 목사였고, 어머니 카롤리네 벤(Caroline Benn)은 프랑스어권 스위스에서 오랫동안 시계 공장을 운영한 가문 출신이었다.

벤은 일곱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 중 둘째, 하지만 아들로서는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는데, 아마 마음을 편하게 둘 수 없었던 냉혹했던 소외의 시간에 대해서는 추억하려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벤 집안의 분위기는 철저하게 미학적 감각이 결여되어 있었는데, 종교적 텍스트와 무미건조한 찬송가만 존재하는 경건하고 각박한 분위기였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가 기본적인 증오 관계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사였던 아버지 구스타프 벤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였다.

그의 행동은 "엄한 훈련과 지나친 광신, 그리고 무자비함"으로 줄여 말할 수 있다.

소년 고트프리트 벤은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더(Frankfurt an der Oder)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이후에 진학 문제로 벤은 아버지와 갈등을 빚게 된다.


고트프리트 벤은 한스 카로사와 더불어 전간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시인이다.

둘은 공교롭게도 같은 의사이지만, 시의 스타일은 판이했다.


카로사의 경우 전통적인 작법을 따른 시인이자, 의사로서도 전통적인 인물이었다면 고트프리트 벤의 경우 정신분석학에 큰 영향을 받아 의사로서도 시인으로서도 진보적인 작법을 구사하던 인물이다.

그의 시는 표현주의에서 출발하여, 허무주의의 극복을 둘러싸고 변모를 거듭하였다.

벤의 시는 표현주의, 초현실주의로 대표할 수 있는데, 이는 나치 정권의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아 나치 독일 당시 큰 제재를 당한다.

작품에 시집 ≪모르그(Morgue)≫, ≪정역학적(靜力學的) 시편≫, 수필 <프톨레마이오스가의 사람들>, 자서전 ≪이중생활≫ 따위가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뇌수>, <서정시의 여러 문제> 등이 있다.

노벨 문학상에 5번 후보로 올랐다. 

1951년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