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독일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

높은바위 2023. 7. 28. 07:24

 

흑인 신부

 

검은 피 묻은 베개 위에

금발의 백인 아내의 목이 누워 있다.

태양은 그녀의 머리칼 속에서 광란하면서

그녀의 희뿌연 넓적다리에 길게 핥고 있고,

음탕한 일도 했고, 출산도 했지만 아직 그 모습이 흉하진 않다.

 

한 흑인 남자가 그녀 곁에 있다.

말굽으로 때려 그녀의 두 눈과 이마가 찢겼다.

그는 더러운 왼쪽 발의 발가락 두 개를

그녀의 작고 흰 귓속으로 쑤셔 넣었다.

하지만 그녀는 신부처럼 누워서 잠잤다.

 

첫사랑 행복의 가장자리에서,

그리고 젊은, 따뜻한 피가 도는

천국순례를 번번이 떠나기 전처럼,

 마침내 그녀의 흰 목에 칼이 꽂히고

그녀의 엉덩이에 죽은 피로 범벅이 된 자줏빛 팬티가 던져졌다.

 

* * * * * * * * * * * * * * *

 

*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 1886년 5월 2일 ~ 1956년 6월 7일)은 독일의 시인, 수필가, 의사이다.

고트프리트 벤은 1886년 5월 2일 베스트프리그니츠(Westprignitz) 지방의 만스펠트(Mansfeld)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구스타프 벤(Gustav Benn)은 당시 29세의 프로테스탄트교 목사였고, 어머니 카롤리네 벤(Caroline Benn)은 프랑스어권 스위스에서 오랫동안 시계 공장을 운영한 가문 출신이었다.

벤은 일곱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 중 둘째, 하지만 아들로서는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는데, 아마 마음을 편하게 둘 수 없었던 냉혹했던 소외의 시간에 대해서는 추억하려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벤 집안의 분위기는 철저하게 미학적 감각이 결여되어 있었는데, 종교적 텍스트와 무미건조한 찬송가만 존재하는 경건하고 각박한 분위기였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가 기본적인 증오 관계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사였던 아버지 구스타프 벤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였다.

그의 행동은 "엄한 훈련과 지나친 광신, 그리고 무자비함"으로 줄여 말할 수 있다.

소년 고트프리트 벤은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더(Frankfurt an der Oder)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이후에 진학 문제로 벤은 아버지와 갈등을 빚게 된다.


고트프리트 벤은 한스 카로사와 더불어 전간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시인이다.

둘은 공교롭게도 같은 의사이지만, 시의 스타일은 판이했다.


카로사의 경우 전통적인 작법을 따른 시인이자, 의사로서도 전통적인 인물이었다면 고트프리트 벤의 경우 정신분석학에 큰 영향을 받아 의사로서도 시인으로서도 진보적인 작법을 구사하던 인물이다.

그의 시는 표현주의에서 출발하여, 허무주의의 극복을 둘러싸고 변모를 거듭하였다.

벤의 시는 표현주의, 초현실주의로 대표할 수 있는데, 이는 나치 정권의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아 나치 독일 당시 큰 제재를 당한다.

작품에 시집 ≪모르그(Morgue)≫, ≪정역학적(靜力學的) 시편≫, 수필 <프톨레마이오스가의 사람들>, 자서전 ≪이중생활≫ 따위가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뇌수>, <서정시의 여러 문제> 등이 있다.

노벨 문학상에 5번 후보로 올랐다. 

1951년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