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더위의 꺼풀을 벗겨내는 비가 종일 오락가락 내리고 있다.
하늘이 맑고 곡식들이 결실을 이루는 좋은 계절이 왔다.
이제 진하디 진했던 여름의 초록색채가 시나브로 쫓겨가고 있다.
천고마비(天高馬肥), 지금이야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으로,
하늘이 맑고 모든 것이 풍성함을 이르는 가을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로 변했지만,
원래의 의미는 중국인들이 '흉노(匈奴)'라고 부르는, 말 타고 전쟁하는 것이 재주인 터키계의 기마 민족을 조심하라는 일종의 경계 의미로 걱정하던 말이었다.
흉노(匈奴)는 기원전 4세기말에서 기원후 1세기까지 몽골 고원과 동 투르키스탄 일대를 지배하여, 번영했던 유목 기마 민족을 중국인들이 일컫는 말이었다.
무적을 자랑하는 진시황이 전국 시대 조(趙) 나라, 연(燕) 나라 등이 쌓은 만리장성(萬里長城)을 크게 증축한 것도, 주로 흉노(匈奴)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 무용이 어떠했다는 것은 짐작이 간다.
북쪽의 광대한 들판에서 봄풀, 여름풀을 배불리 먹은 말은, 가을에는 살이 쪄서 타고 달리면 달릴수록 길 들어 힘이 생긴다.
이렇게 흉노(匈奴)가 쳐들어 올 것을 걱정하는 말이었다.
두보(杜甫)의 종조부인 두심언(杜審言)이 북쪽 변방을 지키러 나간 친구 소미도(蘇味道)에게 보낸 편지에, 흉노(匈奴)족의 침입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쓴 데서 유래하였다.
식욕의 가을을 맞아 하늘이 높고 식성이 좋아져 살이 찐다지만, 독서와 사색으로 우리의 마음의 양식도 풍부히 찌면 더욱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