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기 유학자 圃隱(포은) 정몽주(鄭夢周) 뒤에 우리나라 성리학이 실로 김굉필(金宏弼)로부터 주창됐는데, 뜻을 같이 한 이가 정여창(鄭汝昌: 조선 성종 때의 문신ㆍ학자(1450~1504). 자는 백욱(伯勖). 호는 일두(一蠹). 시호는 문헌(文獻). 성리학의 대가로 경사(經史)에 통달하였다. 무오사화에 관계되어 귀양 가서 죽었다. 정구(鄭逑)의 ≪문헌공실기(文獻公實記)≫에 그 유집(遺集)이 전한다.)이다.김굉필이 이(理)에 밝고 정여창은 수(數)에 밝았는데 불행한 때에 가서 비명에 죽으니 아깝도다.푸르른 하늘이라 어떻다 말하랴. ≪丙辰丁巳錄(병진정사록)≫ 그의 아버지 정육을(鄭六乙)은 이시애의 난에 죽고 편모슬하에서 살았는데, 그의 어머니에 대한 그의 효도는 한국의 한 극한적인 효도방식으로 주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