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미국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높은바위 2023. 3. 14. 07:18

 

       성공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사람에게 존경받고

아이들로부터 사랑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거짓된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들의 뛰어남을 알아채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정원을 가꾸거나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남겨놓는 것;

 

자신이 살았음으로 인하여

한 생명이라도 더 편히 숨 쉬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 * * * * * * * * * * * * *  

 

*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년 5월 25일 ∼ 1882년 4월 27일)은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19세기 초월주의 운동의 중심인물로 미국 최초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6대에 걸쳐서 성직(聖職)을 이어온 아버지 윌리엄 에머슨은 독실한 개신교 목사였으며, 아버지의 길을 따라서 목사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1811년 5월 12일 아버지 윌리엄이 위암으로 죽으면서 고모 메리 무디 에머슨(Mary Moody Emerson)에게 셰익스피어와 낭만주의 문학 그리고 자연에 대해 배웠으며, 고모 무디의 교육은 랠프 월도 에머슨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에머슨은 고모를 "최초이며 최고인 교사"라고 생각했다.



1817년 14세 때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으며, 문학책을 많이 읽어서 책벌레로 교실에서 유명했다.

특히, 독창적인 시를 매우 잘 써서 교실의 추천을 받고, 1821년 8월 28일 졸업하기 한 달 전 "하버드 교실의 날"에 자신이 쓴 시를 발표했다.



1821년과 1824년 사이 에머슨은 그의 두 살 형인 윌리엄 에머슨 (1801~1868)이 교장으로 일하고 있는 여학교 "The School for Young Ladies"에서 교사로 일했다.

이후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의 캔터베리 언덕의 오두막에서 1826년까지 2년 동안 글을 쓰면서 자연을 공부했다.



1826년 에머슨은 몸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갔다.

그런데 몸이 춥다고 느낀 에머슨은 더 남쪽에 있는 플로리다주 세인트오거스틴에서 거주하면서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시를 썼다.

세인트오거스틴에 있으면서 나폴레옹 1세의 여동생의 아들 프린스 아 킬레 무라트 (1801~1847)를 만나서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에머슨은 무라트와 함께 종교, 사회, 철학, 그리고 정부에 대해 큰 깨우침을 주는 토론을 했다.

에머슨은 무라트를 지적인 솔메이트라고 여겼다.

세인트오거스틴에서 거주하는 동안 에머슨은 처음으로 노예제를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어느 날 에머슨은 성경 학회 모임에 참여했는데 모임 건물 밖에서 노예 경매가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고, 노예 경매에서 남부 신사들이 기뻐하면서 노예를 사는 것을 보고 불쾌함을 느꼈다.



1827년 12월 25일 몸이 나아졌다고 생각한 에머슨은 북부로 돌아갔는데 뉴햄프셔주 콩코드에서 낭만주의 문학을 좋아하고 외모가 아름다운 엘렌 루이자 터커를 만났다.

터커를 처음 보고 사랑에 빠진 에머슨은 터커와 1829년 결혼했으나, 터커가 결핵에 걸리면서 그녀의 시어머니 루스 하스킨스의 간병을 받게 되었다.

결국 1831년 터커는 향년 1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