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32. 玄海灘(현해탄)

높은바위 2005. 6. 2. 18:30

 

32. 玄海灘(현해탄)

 

                         임화(林和)

 

  이 바다 물결은

  예부터 높다.

 

  그렇지만 우리 청년들은

  두려움보다 용기가 앞섰다.

  산불이

  어린 사슴들은

  거친 들로 내몰은 게다.

 

  대마도를 지내면

  한 가닥 수평선 밖엔 티끌 한점 안 보인다.

  이곳에 태평양 바다 거센 물결과

  남진해온 대륙의 북풍이 마주친다.

 

  몽블랑보다 더 높은 파도,

  비와 바람과 안개와 구름과 번개와,

  아세아의 하늘엔 별빛마저 흐리고,

  가끔 반도엔 붉은 신호등이 내어걸린다.

 

  아무러기로 청년들이

  평안이나 행북을 구하여,

  이 바다 험한 물결 위에 올랐겠느나?

 

  첫번 항로에 담배를 배우고,

  둘째번 항로에 연애를 배우고,

  그 다음 항로에 돈맛을 익힌 것은,

  하나도 우리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늘

  희망을 안고 건너가,

  결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느티나무 아래 전설과,

  그윽한 시골 냇가 자장가 속에,

  장다리 오르듯 자라났다.

 

  그러나 인제

  낯선 물과 바람과 빗발에

  흰 얼굴은 찌들고,

  무거운 임무는

  곧은 잔등을 농군처럼 굽혔다.

 

  나는 이 바다 위

  꽃잎처럼 흩어진

  몇 사람의 가여운 이름을 안다.

 

  어떤 사람은 건너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돌아오자 죽어갔다.

  어떤 사람은 영영 생사를 모른다.

  어떤 사람은 아픈 패배에 울었다.

   --- 그중엔 희망과 결의를 자랑과 욕되게도 내어 판 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지금 기억코 싶지는 않다.

 

  오로지

  바다보다도 모진

  대륙의 삭풍 가운데

  한결같이 사내다웁던

  모든 청년들의 명예와 더불어

  이 바다를 노래하고 싶다.

 

  비록 청춘의 즐거움과 희망을

  모두 다 땅속 깊이 파묻는

  비통한 매장의 날일지라도,

  한번 현해탄은 청년들의 눈앞에,

  검은 喪帳을 내린 일은 없었다.

 

  오늘도 또한 나젊은 청년들은

  부지런한 아이들처럼

  끊임없이 이 바다를 건너가고, 돌아오고,

  내일도 또한

  현해탄은 청년들의 해협이리라.

 

  영원히 현해탄은 우리들의 해협이다.

 

  삼등 선실 밑 깊은 속

  찌든 침상에도 어머니들 눈물이 배었고,

  흐린 불빛에도 아버지들 한숨이 어리었다.

  어버이를 잃은 어린 아이들의

  아프고 쓰린 울음에

  대체 어떤 죄가 있었는가?

  나는 울음소리를 무찌른

  외방 말을 역력히 기억하고 있다.

 

  오오! 현해탄은, 현해탄은,

  우리들의 운명과 더불어

  영구히 잊을 수 없는 바다이다.

 

  청년들아!

  그대들이 조약돌보다 가볍게

  玄海의 큰 물결을 걷어찼다.

  그러나 관문해협 저쪽

  이른 봄 바람은

  과연 반도의 북풍보다 따스로웠는가?

  정다운 부산 부두 위

  대륙의 물결은

  정녕 현해탄보다도 얕았는가?

 

  오오! 어느날

  먼먼 앞의 어느날,

  우리들의 괴로운 역사와 더불어

  그대들의 불행한 생애와 숨은 이름이

  커다랗게 기록될 것을 나는 안다.

  一八九0年代의

  一九二0年代의

  一九三0年代의

  一九四0年代의

  一九××年代의

  ------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간

  폐허의 거칠고 큰 비석 위

  새벽 별이 그대들의 이름을 비칠 때,

  현해탄의 물결은

  우리들이 어려서

  고기떼를 좇던 실내처럼

  그대들의 일생을

  아름다운 전설 가운데 속삭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

 

                       1938. 시집 ꡔ현해탄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