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24. 鄕 愁

높은바위 2005. 6. 2. 06:17
 

24. 鄕    愁

                         정  지  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참아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참아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참아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참아 꿈엔들 잊힐리야.

 

                 1927. 조선지광



* 이 작품은 정지용의 초기시의 하나로서, 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을 주정적으로 노래했다. 작품에서 그리는 공간은 당시의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며,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이런 뜻에서 이 작품은 특정한 개인의 체험을 넘어서서 한국인이 지닌 향수의 보편적 영상으로 수용될 만하다.

  작품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 부분마다 고향의 모습을 회상하는 연이 먼저 나오고 ‘ --- 그 곳이 참아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독백이 이어짐으로써 간절한 그리움을 반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반복의 수법은 무척 단순한 것이지만, 그 어떤 복잡한 기교보다도 절실하게 시인의 심경을 나타내 준다. 이 작품은 포근함과 아름다운 꿈이 서려있는 고향의 모습과 함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의 모습이 담긴 고향을 형상화한 것으로, 고향에 대한 시인의 그리움이 진하게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