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69. 깃 발

높은바위 2005. 8. 11. 06:23
 

169. 깃   발


                         유 치 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1936. 조선문단.


1.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2.이 시는 어떤 상황을 노래한 것인지 상상하여 한편의 이야기로 꾸며 봅시다.

  시인은 깃대에 매인 채,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유한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상향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를 나타내고 있다. 결국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들던 이상의 손수건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만다.

3.이 시는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청마의 초기시의 한 주조인 연민과 애수의 서정을 통해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허무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것은 의지가 감상적 허무에 압도되어 있는 초기시의 시적 자아를 대표적으로 표상하고 있다.

  남성적인 목소리로써 강건하고 원대한 어조로 전개하다가 결국은 비장감에 찬 목소리로 반전되고 마는 시이다. 즉 원대한, 동경어린 어조로 시작하여 애상(哀想)에 젖은 채 끝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중심 심상은 물론 ‘깃발;이다. ’깃발‘을 표상하기 위하여 ’아우성, 손수건, 순정, 애수, 마음‘ 등의 5개의 매개어가 상징의 동심원(同心圓)을 형성하고, 그 파동감이 이 시의 심상을 역동적이게 한다. 이 파동감을 하나의 자기장(磁氣場)같은 것이라고도 한다. ’깃발‘은 ’이념의 푯대‘끝에서 이상향을 향하여 파동짓는 의지를 상징한다. 외곬으로 이상향에 집념하는 의지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것은 ’애수‘, ’애닯은 마음‘을 만나게 되면서 동경의 세계, 이상의 세계에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감상적 마음, 즉 허무를 상징한다. 구래서 ’깃발‘을 동경과 좌절을 동시에 표상하는 낭만적 아이러니의 상징이라고 한다.  또한 이런 주제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푸른 해원과 백로의 색채(시각)적 심상의 대조이다.

  아무튼  청마는 이 시에서 모순과 부조리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인간 존재의 사실성을 보여주었다.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의지가 환멸과 비애로 귀결되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4.구성

  깃발의 역동적 모습(1-3행)

  깃발의 순수한 열정과 애수(4-6행)

  인간 존재의 동경과 좌절의 아픔(7-9행)

  동경과 향수의 심상(1-5행)

  좌절과 비애(6-9행)

  

5.이 시의 핵심적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첫행에 등장하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아우성이 소리가 없을 수는 없다. 이런 것을 시에서는 ‘모순형용(矛盾形容:oxymoron)’이라고 부른다. 수식을 하는 말과 수식을 받는 말이  모순관계에 있다는 말이다. 논리학적으로는 이율배반적인 것이다. 이런 예로는 ‘찬란한 슬픔’, ‘작은 거인’, ‘현명한 바보’, ‘검은 태양’ 등이 있다. 이런 표현은 상식적인 논리로는 모순이지만 특이한 경험이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때때로 쓰인다.


6.주제

  이상향에 대한 끝없는 향수와 그 비애

 

7.지은이 소개

  유치환(柳致環:1908-1967)호는 청마(靑馬). 경남 충무 출생. <문예월간 2호에 「정적(靜寂)」을 발표하며 등단.  모더니즘의 감각적 기교를 부정하고 생명의 본질과 옳고 강한 삶을 준열한 목소리로 노래하였으며 인간의 의지를 시화하는 생명파 시인으로 평가됨. ‘허무와 의지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우리 현대시에서 인생과 사회의 부조리에 윤리의식으로 대결하며 형이상학적인 지향을 보인 첫 시인이다. 희곡작가인 유치진이 그의 형. 시집에 ꡔ청마시초ꡕ(1939), ꡔ생명의 서ꡕ(1947), ꡔ울릉도ꡕ(1948), ꡔ보병과 더불어ꡕ(1951), ꡔ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ꡕ(1960) 등이 있다.


8.생각해 봅시다.

  (1)‘깃발’의 상징성을 자세히 알아보자.

    * ‘깃발’은 존재와 지향 욕구의 모순과 부조리를 표상한다. 이상향에 도닳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도전해 보는 반어(irony)이다. ‘깃발’은 동경과 좌절을 동시에 표상하는 낭만적 아이러니의 상징이다. 낭만적 아이러니란 현실과 이상, 유한적인 것과 무한적인 것, 자연과 정신, 감성적 세계와 이성적 세계 등의 대립의식에서 기인한다. 

  (2)우리말 ‘향수(鄕愁)’의 의미를 homesickness와 nostalgia로 나누어 설명해 보자.

   *자기가 실제로 태어나서 자란 고향을 지향하는 것은 homesickness로, 이상향이나 미지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은  nostalgia라고 부른다. 전자가 과거지향적이라면 후자는 미래지향적이다. 하지만 신화적 원형(原型)을 따른다면 둘다 결국은 인류공통의 시원(始原)의 영지(領地)일 것이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도연명의 ‘무릉도원’, 그리고 먼 에덴동산일 것이다.

 

9.이 시는 어떤 작품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까요.

    도달할 수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모하게 도전하는 면에서 「시지프스 신화」와 결국은 매달려서 이상향으로 갈 수 없다는 주제의식면에서 서정주의 「추천사」와 관련된다. 한편, 김남조의 「정념의 기」와는 갈망의 세계를 깃발로 표현한다는 면에서,  이호우의 「깃발」과는 제목은 같지만 주제의식이 정반대(허무의 극복)라는 면에서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