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저녁에
김 광 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2.이 시는 어떤 상황을 노래한 것인지 상상하여 한편의 이야기로 꾸며 봅시다.
「시는 기교 아닌 마음으로 써야」(ꡔ산실의 대화ꡕ, 조선일보 문화부편, 1978)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12년 전이지요. 그해, 그러니까 65년 4월 입니다. 서울 운동장에서 좋아 하지도 않는 야구 구경을 처음 갔다가 쓰러졌어요. 뇌일혈이었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 메디컬센터에 누워 있더군요. 꼭 한 주일 동안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어요. 담당의사도 가망없는 것으로 보았고 가족들도 각오하고 있었답니다. 다행히 석달만에 퇴원을 했어요. 나로선 제2의 인생이 시작된 셈이지요. 늘 앓으면서, 양식(良識)을 기르는 그런 생활이지요.
3.이 시는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생의 감각」 이후 약 2년 뒤인 1969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인간 존재성에 대한 내밀하고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 준다. 발병하고 나서 병상에 누워 있고, 또 재생(再生)한 후, 시인은 여러 가지 삶에 대한 생각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삶 속에서의 삶이 「생의 감각」의 ‘밤’으로 표현되었다면, 이 시에서의 ‘밤’은 안식과 외로움의 시간, 평화의 이미지로 변모되어 있다.
별의 빛나는 밝음에 대조되는 인간 현실의 어려움, 혹은 고뇌의 어둠은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인 시인의 모습으로서 나타난다. 이는 인간 관계의 본질적인 모습으로 군중 속에서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현대인의 숙명적인 단절감, 고립이 나타나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생의 인식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구절로 표현된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다가 밝은이 다가오면 사라지는 별의 모습은 온갖 어둠을 헤치며 살아가다가 홀로 죽어가는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을 상징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시는 물질 문명에 밀려서 소외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외로운 저화상을 그려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서는 그의 「성북동 비둘기」에 연결되는 정서이기도 하다.
이 시는 김기환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그림으로 형상화 되기도 하였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그림과 동일한 제목의 유행가로 만들어져 젊은이들 사이에서 애창되기도 하였다.
4.구성
단독자로서 고절감(1연)
별과 인간의 동질성(2연)
재회의 소망(3연)
5.이 시의 핵심적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밝은 속에 사라지는 별’과 ‘어둠 속에 사라지는 나’의 대응이다. 별이 밤하늘의 어둠 속에서 그 밝음을 더해 가듯이 , 인간의 삶 역시 역경과 시련을 헤쳐 나아가는 데서 비로소 참된 빛과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보여 준다.
6.주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7.지은이 소개
8.생각해 봅시다.
(1) 만약 이 시에서 영원한 소멸도, 영원한 생성도 없다는 불교의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어느 부분인가.
*마지막 연.
9.이 시는 어떤 작품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까요.
「생의 감각」에서의 생명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삶의 재발견이 이시에서 이념적 형상을 획득하였다. 「생의 감각」에서 여명으로서의 시간 배경이 「저녁에」로 바뀐 것도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