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66. 가늘한 내음

높은바위 2005. 8. 9. 10:48

 

166. 가늘한 내음

 

                                 김 영 랑

 

내 가슴 속에 가늘한 내음

애끈히 떠도는 내음

저녁 해 고요히 지는 제

머언 산(山) 허리에 슬리는 보랏빛

 

오! 그 수심 뜬 보랏빛

내가 잃은 마음의 그림자

한 이를 정열에 정열에 뚝뚝 떨어진 모란의

깃든 향취가 이 가슴 놓고 갔을 줄이야.

얼결에 여흰 봄 흐르는 마음

헛되이 찾으려 허덕이는 날

뻘 우에 처얼석 갯물이 놓이듯

얼컥 니이는 훗근한 내음

 

아 ! 훗근한 내음 내키다 마아는

서어한 가슴에 그늘이 도오나니

수심 뜨고 애끈하고 고요하기

산 허리에 슬리는 저녁 보랏빛

 

*  이 시는 김영랑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같이 이 시인의 유려한 언어 미학의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시라 하겠다.

  ‘내마음 속에 가늘한 내음’이라는 내면의 모습을 표상화한 말로 시작되는 이 시는 그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감각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머언 산 허리에 슬리는 보랏빛’으로 구상화된다. 그것은 또 ‘수심뜬 보랏빛’이며, ‘애끈하고 고요한’ 상태임을 말해 준다. 더하여 그 마음은 상실과 애상 그 직전의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시인의 부드럽고 여린 심적 상태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세련된 시어와 감각적 이미지 이외에도 시인의 언어적 감수성은 의도적인 운율 배치에 소홀하지 않았다. ‘얼결에 여흰 봄/흐르는 마음’ 등 곳곳에서 나타나는 ‘강함.여림’의 배치, ‘뚝뚝 떨어진’ 따위의 음성률과 중간 운, 각운의 효과적 이용, 7․5조의 반복과 변조 등 생명력 넘치는 리듬감을 찾을 수 있다.

  이상의 모든 요소가 한데 어울려 아련한 애상미, 그리고 미묘한 언어적 질감을 드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