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65. 길

높은바위 2005. 8. 9. 10:46

 

165.   길

 

                                김 소 월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였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定州) 곽산(郭山)

차(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문명 창간호>, 1925.12

 

  이 시는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의지할 곳 없는 서글픈 심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암담하고 처량한 심정을 나타내기 위해서 ‘가마귀’를, 향수의 정감을 나타내기 위해 ‘기러기’를, 방황하는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열십자’를, 나그네의 끝없는 유랑의 비애를 표현하기 위해 ‘길’을 제시했다.

  7․5조 3음보의 리듬과 일상적인 언어, 자문자답의 독백체 속에 시적 자아는 고독하고 암담한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