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산
김 광 섭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 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도 되고 명산이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창작과비평」1968년 5월호
1.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2.이 시는 어떤 상황을 노래한 것인지 상상하여 한편의 이야기로 꾸며 봅시다.
시인은 1965년 4월 22일 서울운동장에서 야구경기를 구경하다가 뇌일혈로 졸도, 일주일만에 깨어나고 이후 약 수 년을 죽음과의 끈질긴 투쟁으로 보낸다. 그런 가운데 시인은 「생의 감각」이라는 시를 쓰게 된다. 즉, 생명의식과 인간존재에 대한 내밀한 성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차 시인은 사회적 존재, 현실적 존재로서 인간 현실에 대한 문명비판적 태도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물론 1960년대 후반부터 이 땅에 대두되기 시작한 산업화의 병폐와 부조릴 문제로 연결된다.
3.이 시는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긍정적인 자연관을 가지고 삶과 사람과 자연의 일체감을 그려낸 시이다. 하지만 종래 청록파들의 시와는 달리 자연의 서경을 노래하거나 자연친화만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산이 주는 넉넉함과 자애로운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면서 산의 장엄함과 포용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산에게 있어서 산의 모습은 참모습의 인간과 이런 인간들이 어울려 이루는 참된 인간적 삶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산을 인간과 유리된 찬양과 외경의 대상만이 아니라 늘 인간 가까이서 인간과 함게 지내려는 친한 친구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산은 모든 것을 품안에서 키우며 따뜻하게 감싸준다. 억지로 구속하고 간섭하는 일은 없다. 그저 묵묵히 웃으며 기다릴 뿐이다. 그렇지만 산은 무턱대고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사람사는 꼴이 어수선 하면 은근한 자연의 섭리로 인간을 깨치려 한다. 때로는 신경질도 부리며 엄한 스승의 모습을 보이고, 마무를 기르는 인내와 벼랑을 오르는 겸허를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삶의 스승으로서의 산의 모습, 다ㅓ시 말하면 산의 자세로서 인간의 모습을 바라는 시인의 의지를 보게 된다.
4.구성
산의 묵묵함(1연).
산의 섬세함(2연)
산의 포용성(3연)
산의 숭고함(4연)
산이 주는 교훈성(5-9연)
5.이 시의 핵심적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산의 이미지이다. 숭고함, 넉넉함, 자애로움, 섬세함, 포용성, 장엄함, 계시성(啓示性), 달관성을 가지고 있는 산의 이미지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6.주제
삶과 사람과 자연의 일체감.
7.지은이 소개
8.생각해 봅시다.
1) 이 시를 현대를 사는 우리들과 이웃의 삶과 연관시켜 본다면 주제의식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는가.
* 김광섭 시는 이웃, 또는 서민과의 일체감이 시의 바탕을 이룬다. 다시 서민과의 일체감의 바탕이 되는 것은 우애(友愛)라고 할 수 있는 이웃에 대한 깊고 겸허한 사랑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시는 산과 인간의 일체감을 통해 이웃에 대한 따뜻한 우애와 겨레에 대한 폭넒은 사랑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9.이 시는 어떤 작품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인간과 자연의 일체감, 서민들에 대한 애정을 그려냈고 문명비판적이란 점에서 「성북동 비둘기」와 유사하다. 서민과의 일체감까지 시를 확대해 보면 그의 시 「겨울날」, 「우정」 등과도 연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