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33. 落 花

높은바위 2005. 7. 27. 06:19
 

133. 落    花

 

                                  이 형 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落花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자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1957. 현대문학

 

* 이형기 시인은 전후 황폐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참신한 서정으로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어 왔고 우리의 서정시를 한층 밀도있게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존재의 소멸성과 허무에 대해 천착했고 인생과 존재의 본질적 문제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윗 시「낙화」에서 시인은 꽃이 지는 모습에 인간의 이별을 겹쳐 그림으로써 한국인의 잠재된 정한을 뛰어나게 표현하였다. 시인은 이 시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그린다. 피었던 꽃이 지는 것은 꽃이 지닌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인간의 사랑 역시 그 자연적 질서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는 이 시는 한국인의 잠재된 정한에 그 서정의 맥이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