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23. 꽃

높은바위 2005. 7. 24. 06:18
 

123.

 

                    김 춘 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고 싶다.

 

                      1952. 시와 시론

 

* 시는 ‘존재론적 시’로서 ‘몸짓 - 꽃 - 의미’에로의 단계적인 의미의 심화 과정이 전개되어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면, 인간이란 서로가 함께 사는 사랑의 관계임을 말하고 있는 이 시는 지성과 감정을 교묘하게 통합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가 근원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나’와 ‘너’의 관계를 ‘우리’라는 인간 관계로 바꿈으로써, 함께 사는 존재로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진정한 관계 형성을 간절히 바란 작품이다.